[오늘과 내일/홍찬식]서울대 면접시험장에서 생긴 일

  • 입력 2007년 2월 6일 20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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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서울대 면접시험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교수들이 수험생에게 우리말과 한자가 섞인 지문을 주고 읽어 보라고 했더니 대부분 한자를 읽지 못했다. 어려운 한자도 아니었다. ‘지원(支援)’ ‘역할(役割)’ 같은 일반적으로 쓰이는 한자였다. 또 영어 지문을 주고 해석해 보라고 했더니 머뭇거리는 사정은 비슷했다.

다른 대학의 공대 1학년 수업에서 교수가 칠판에 적분기호를 그렸다.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교수님, 그 기호가 뭔가요?” 교수는 어이가 없었다.

연간 60조 원 쏟는 교육의 초라함

요즘 아이들은 영상세대라서 감성이 발달해 있고, 컴퓨터세대라서 정보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능력이 출중하다고 해도 우리말 어원(語源)의 70%를 차지하는 한자를 모르고 어떻게 대학 공부를 따라갈 수 있을까.

교수들은 학생들의 영어 독해력이 너무 부족하다고 말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영어를 잘한다는 건 회화에 국한된 얘기라는 것이다. 국어책이든, 영어책이든 독서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한다. 수학, 과학의 기초실력도 실망스럽다.

올해 교육예산은 처음으로 30조 원을 넘어섰다. 정부 일반회계 158조 원의 20%에 해당하는 31조2160억 원이 교육예산이다. 어디 그뿐인가. 사교육비 규모는 대략 같은 기간의 공교육 예산과 맞먹는 것으로 추정된다. 공교육비와 사교육비를 합쳐 연간 60조 원을 쏟아 붓고도 우리 교육의 성과는 초라하다.

무엇이 잘못됐을까. 첫 번째로 꼽아야 할 것이 교육 당국의 근시안이다. 최근 과학계 인사들은 중고교의 과학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를 전달하러 교육인적자원부에 찾아갔다. 교육부의 반응은 황당했다. “교사들의 세력 다툼에 왜 과학계가 끼어드느냐”는 것이었다.

곧 확정되는 교육과정 개정을 앞두고 교사들이 서로 자기 과목이 필수가 되어야 한다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음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하지만 교과과정 개편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몇 해 전부터 미래에 요구되는 ‘핵심 역량’을 강조한다. 세계 석학들에게 의뢰해 앞으로 어떤 능력이 절실한지 연구하게 한 결과 ‘언어와 기술, 소통과 협동, 자기 해결 능력’ 세 가지가 답으로 나왔다. 학교 교육을 통해 이런 자질을 길러 줘야 한다는 것이다.

선진국이 이에 맞춰 교육 내용을 새로 짜는 시점에 우리 교육부는 교사들의 ‘과목 이기주의’를 조정하는 선에서 끝내려 하고 있다. 과학계 인사들이 교육부를 방문한 것은 현재의 취약한 과학교육으로는 국가 장래가 걱정스럽다는 호소였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이런 교육 당국에 뭘 기대할 수 있을지 답답하다.

또 사교육 공포증에 걸려 사교육을 확대하는 것이면 뭐든지 거부하는 방향으로 우리 교육을 끌어가고 있다. 예컨대 음악 미술과 같은 예술교육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이 21세기에 가장 필요한 과목으로 꼽고 있다. 부가가치가 중시되는 장래에는 문화적 안목이 ‘먹고사는 문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목표를 상실한 한국 교육

그러나 우리는 예능교육을 확대하면 사교육이 또 늘어난다고 해서 부정적이다. 일찍부터 문화적 소양을 갖춰 나가는 경쟁국 젊은이들과 비교하면 출발선부터 뒤져 있는 셈이지만 우리는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있다.

올해 대입 논술고사에서 채점 교수들은 학생들 답안에 사교육을 받은 흔적이 있으면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고 했다. 논술시험을 보는 목적이 ‘사교육 답안’을 골라내려는 것인지, 글쓰기 실력을 측정하는 데 있는 건지 헷갈린다.

한국 교육은 목표를 상실한 교육이다. 지나친 평등교육과 사교육비 문제, 교사 이기주의 같은 당장의 과제에 휘말려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 이런 교육이 성과를 내기를 기대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겠는가.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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