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칼럼]‘대통령 말씀’ 內在的해설

  • 입력 2006년 12월 26일 20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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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운동가로서의 경력 때문인지 현장 분위기에 편승하는 연설을 좋아한다. 지난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연설 당시 현장 분위기는 다소 ‘업(up)’돼 있었다는 전언이다. 평통 자문위원들은 김영삼 정부 때까지는 보수 인물 일색이었으나 김대중(DJ) 정부 때부터 햇볕정책 지지자들로 물갈이되기 시작했다. 신상우, 이재정 수석부의장 체제에서 노 대통령 지지자도 다수 들어갔다.

청와대 비서 “결국 고건에 플러스”

노 대통령은 현장의 ‘업’된 분위기에 빠져들어 예정 시간을 훨씬 넘겨 격정 연설을 1시간10분이나 끌고 갔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참석자들을 우군(友軍)이라고 판단하고 속내를 숨김없이 표출했다는 것이다.

대북 송금 특검에 대한 언급도 DJ에 대한 공격이라기보다는 햇볕정책 지지자인 자문위원들에게 특검 수사의 불가피성을 해명하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DJ 측을 의식해 철저히 계산된 발언이라는 풀이였다.

노 대통령은 고건 전 국무총리에 대해 홍보수석실을 동원해 두 차례나 반박한 것도 성이 안 찼던가 보다. 어제 국무회의에서 “나는 DJ와 차별화를 안했는데…”라고 모두(冒頭)발언을 한 것을 보면 꽤 삐친 모양이다. 노 대통령은 호남표 때문에 DJ와 차별화를 못 했겠지만 노 대통령의 요즘 지지율로 보아 고 전 총리가 얻어 갈 ‘노무현 지지자’표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한 비서관은 “청와대에는 대통령의 연설이 결과적으로 고 전 총리를 도와주었다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고 전 총리 측은 노 대통령과 선을 긋고 차별화를 하고 싶은데도 정리(情理) 때문에 망설이던 터에 ‘실패한 인사’ 발언이 나오자 즉각 반박 성명을 낸 것을 보더라도 속된 말로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 준 격’이라는 것이다.

청와대는 고건 때리기 글을 ‘논평가 비서관’ 실명(實名) 대신에 ‘홍보수석실’ 명의로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양정철 비서관의 대통령에 대한 절대 충성형 독설이 한번 나왔을 법도 한데 여당에서도 ‘양을 쫓아내라’는 요구가 쇄도해 요즘 그는 청와대 안에서 글쓰기를 ‘자제당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라면 사십시오” “군대 가서 몇 년씩 썩히지 말고” “국방비로 군인들이 떡 사먹었나” “미국 엉덩이 뒤에서 숨어서” 등은 대통령으로서 품격을 떨어뜨리는 표현이었다. 그러나 한 비서관은 “대통령 특유의 현장연설 수사법(修辭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거친 수사’ 때문에 ‘진의’가 왜곡됐다는 것이다.

대통령비서실도 운동가 출신 대통령의 즉흥 연설을 되도록 말리느라 고생이 많은 것 같다. 대통령이 재야 노동운동가 시절 울산과 경남 거제의 공장에서 연설할 때는 마이크의 파장이 집회장 밖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작은 모임에 가서 가볍게 말해도 현장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증폭을 일으킨다. 한 관계자는 “비서실에서 쓴 원고대로 발언했으면 이런 탈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 비서관 정도는 주저앉히기가 쉽지만 대통령의 운동가형 연설은 자제시킬 사람이 청와대 안에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밖에선 “요동 없는 사회의 成熟확인”

대통령 발언에 대한 시중의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로 갈렸다. 한쪽은 대통령의 수에 말려들 수 있으니 혀끝을 차는 정도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쪽은 대통령 발언이 국민 가슴을 철렁거리게 하는 1년을 또 견뎌야 하느냐는 걱정이었다. 한 교수는 “대통령의 폭탄발언에도 나라가 요동치지 않는 것을 보며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논평했다. 대통령은 “노무현이 하는 것 반대하면 다 정의(正義)냐”며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노무현 반대’가 정의가 될 수 있음을 성찰했어야 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다사다난한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새해에는 정치인들이 부디 말수를 줄이고, 눈과 귀를 열어 시정(市井)의 고단한 삶을 살피고, 널리 들어 주기를 보통 국민은 소망하고 있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 황호택이 만난 인생리더 10인 ‘그들에게 길을 물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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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길을 물으니
황호택이 만난 인생리더 10인
지은이 : 황호택
가격 : 11,000 원
출간일 : 2006년 11월 24일
쪽수 : 351 쪽
판형 : 신국판
분야 : 교양
ISBN : 8970904956
비고 : 판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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