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報 독자인권위 좌담]‘바다이야기’ 보도와 인권

  • 입력 2006년 9월 15일 03시 02분


코멘트
본보 독자인권위원회 이지은 위원, 김일수 위원장, 최현희 윤영철 위원(왼쪽부터)이 13일 동아미디어센터 14층 회의실에서 ‘바다이야기 보도와 인권’을 주제로 좌담을 했다. 김미옥  기자
본보 독자인권위원회 이지은 위원, 김일수 위원장, 최현희 윤영철 위원(왼쪽부터)이 13일 동아미디어센터 14층 회의실에서 ‘바다이야기 보도와 인권’을 주제로 좌담을 했다. 김미옥 기자
《사행성 성인게임 ‘바다이야기’ 집중 보도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무책임한 대책이 나라와 사회에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지 보여 주었다. 하지만 실체는 제대로 밝히지 못한 채 소나기식으로 의혹만 나열해 무엇이 사실인지 혼란스러웠다는 지적도 있었다. 동아일보 독자인권위원회는 13일 본사 회의실에서 ‘바다이야기 보도와 인권’을 주제로 좌담했다. 김일수(고려대 법대 교수) 위원장과 윤영철(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이지은(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 최현희(변호사) 위원이 참석했다.사회=송영언 독자서비스센터장》

―이번 보도의 긍정적인 측면부터 살펴보지요.

▽윤영철 위원=보도가 있기 전까지는 바다이야기를 몰랐던 사람이 의외로 많았던 것 같습니다. 문제의 심각성을 미처 몰랐던 셈인데 보도를 통해 “아하, 이렇게 문제가 많구나” 하는 여론을 환기시키고 공권력의 수사를 유도한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됩니다.


▽김일수 위원장=게임 경륜 경마 복권 등 사행성 오락이 ‘산업’이라는 이름으로 부쩍 늘어났습니다. 바다이야기도 경계심을 늦추고 있는 사이에 우리의 삶 속까지 파고들었습니다. 이를 이슈화해 문제를 바로 잡는 데 기여했다고 봅니다.

▽최현희 위원=도박으로 인한 가산탕진 가정파탄 자살 등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 널려 있고, 누구나 빠져들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웠다고 봅니다. 요행이 아니라 근로를 통해 부(富)를 축적해야 한다는 건전한 사고방식을 심어 주는 계기가 됐지요.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특히 인권 차원에서 지적할 점은 없는지요.

▽이지은 위원=언론이 처음부터 권력 주변 인사들을 거론하면서 권력형 게이트로 몰아간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국민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들이 배후에서 모종의 역할을 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요. 소문과 사실을 제대로 구별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쓰면서 사안이 본질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는 느낌입니다.

▽윤 위원=선정적 접근과 정치적 파장이 상승 작용을 하면서 엄청난 보도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사실 이 사건의 핵심은 경품용 상품권 부분인데 처음 기자들이 핵심에 바로 접근하지 못하면서 기사가 부풀려진 측면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의 이름이 실명으로 보도되고 명예훼손의 우려도 커졌습니다. 아직 권력형 비리라고 볼 수 있는 단계도 아닌데 말이죠.

▽최 위원=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왜’라는 근원적 질문은 없이 의혹만 양산해 내는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독자에게 상상의 날개를 펴도록 유도했다는 점은 반성할 대목입니다. 뒤에라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는 부분이 있다면 해명의 기회를 제공해 훼손된 인권을 회복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김 위원장=주변에서 언론이 너무 나갔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물위에 뜬 ‘빙산(氷山)의 일각(一角)’을 찾아 보도하고 물밑에 숨겨진 거대한 배후는 경찰 검찰 등 공적 장치를 통해 밝혀내는 것이 건전한 시스템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언론이 빙산을 뒤집어 거대한 바닥을 주제로 논의하느라 많은 것을 놓쳤습니다. ‘○○○의 동생’ 또는 ‘○○○의 조카’ ‘○○○의 인척’ 식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까지 겨냥해 연대책임을 묻는 보도가 적지 않았던 것도 문제였습니다.

―정권 말로 접어들면서 권력 주변 인사의 부조리나 비리 의혹이 터질 가능성이 많은데 어떻게 보도하는 게 바람직할까요.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해 봤으면 합니다.

▽윤 위원=바다이야기 보도를 보면서 즉흥적으로 접근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유를 갖고 기획해 심층 탐사보도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사회 문제로 떠오르기 전에 미리 자료를 축적하고 대비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예단(豫斷)에 의한 보도의 정형화도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얘기가 들리고 있다”는 식으로 주어가 생략된 모호한 수동태 문장도 없어져야 합니다.

▽이 위원=보도의 근거도 찾기 어려운 무책임한 기사를 대할 때면 너무하다는 생각에 앞서 기자의 자질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는 신문의 공신력으로까지 이어지는 문제입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기사의 엄격성입니다.

▽최 위원=한 언론이 터뜨리면 일단 받아쓰고 보는 관행이 문제를 급속히 확산시키는 부작용을 빚는다는 점에서 보도경쟁 체제도 점검해야 할 부분입니다. 독자도 판박이 보도보다 심층보도를 원하는 시대입니다. 하루 이틀 늦더라도 받아쓰기 전에 나름의 검증을 거치고 ‘플러스 알파’로 설득력을 높이려는 노력이 요구됩니다.

▽김 위원장=의혹을 제기하려면 무엇보다 출처의 신뢰도, 정황의 충분성이 있어야 합니다. 희생의 최소화, 보도의 절제 등도 필요합니다. 진실이 아니라고 드러날 수도 있는 상황까지 고려해 가능한 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야 합니다. 특히 많은 얘기가 쏟아져 나올 수 있는 정권 말에 언론은 더욱 ‘자기와의 싸움’에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정리=김종하 기자 1101h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