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報 독자인권위 좌담]주제: 댓글과 인권

  • 입력 2006년 10월 16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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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과 인권을 주제로 얘기를 나누고 있는 본보 독자인권위원회 김일수 위원장, 최현희 이지은 윤영철 위원(왼쪽부터). 댓글에 따른 인권 침해를 줄이기 위해 법을 엄격히 적용하고 인터넷 윤리교육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병기 기자
댓글과 인권을 주제로 얘기를 나누고 있는 본보 독자인권위원회 김일수 위원장, 최현희 이지은 윤영철 위원(왼쪽부터). 댓글에 따른 인권 침해를 줄이기 위해 법을 엄격히 적용하고 인터넷 윤리교육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병기 기자
《인터넷 공간에 댓글이 넘쳐난다. 여러 사람의 댓글이 뭉쳐 사회 발전을 위한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평가도 있지만 악의적 비방이나 허위 사실을 퍼뜨려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걱정도 많다. 본보 독자인권위원회는 13일 본사 회의실에서 ‘댓글과 인권’을 주제로 좌담을 가졌다. 김일수(고려대 법대 교수) 위원장과 윤영철(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이지은(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 최현희(변호사) 위원이 참석했다. 사회=송영언 독자서비스센터장》

―악성 댓글로 인한 인권 침해 사례부터 살펴보지요.

▽이지은 위원=최근 사례로 ‘김태희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재벌 후계자와의 결혼설(說)이 인터넷 공간에 번지면서 형사 고소를 하기에 이르렀고 상당수의 누리꾼이 불구속 입건됐지요. 북한을 방문했던 임수경 씨의 아들이 사망한 후 악의적 댓글을 달았던 누리꾼들은 형사 처벌을 받았습니다.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재미로 댓글을 즐기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댓글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받게 되는 고통에 대해서 무지한 것이죠.

인권침해-인신공격 난무

▽최현희 위원=북한 핵실험에 대해 “잘했다”는 댓글이 뜨자마자 “간첩은 북으로 가라”는 식의 비난이 쏟아지고 “응징해야 한다”는 댓글에는 “제국주의에 빌붙은 보수꼴통”이라는 비아냥거림이 터져 나옵니다. 댓글끼리 서로 인권을 침해하는 현상입니다. 합리적 토론은커녕 인신공격이 난무하고 서로 갈라져 욕설을 퍼붓는 등 심각합니다.

▽김일수 위원장=악성 댓글은 익명성 뒤에 숨어서 적나라한 분노와 적개심을 드러내며 폭언을 거르지 않고 표출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잡초(雜草)와 독초(毒草)가 무성해 화초(花草)는 찾아보기 어려운 ‘발가벗은 전투장’으로 변했다고 할까요. 감정에 대한 배려도 없이 인격 모독과 명예훼손의 단계까지 번져 가는 양상이 우려됩니다.

▽윤영철 위원=특권층이나 성공한 사람, 또는 인기인일수록 가혹한 내용의 댓글이 뜨는 양상입니다. 모 아나운서의 ‘베스트셀러 대리 번역 의혹’이 터지자마자 ‘백쪽녀’라는 유행어까지 생겨났습니다. “하루 100쪽을 번역했다”는 발언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보이는데 인기인에 대한 일반의 정서가 분노로 흐르면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것이겠지요. 언론사가 인권 침해를 우려해 익명 보도를 했는데 독자가 댓글을 통해 “○○○다”라고 실명을 밝혀 버리는 일도 있습니다. 광고성 댓글도 잦아지는 양상입니다.

―정부가 공무원에게 언론 보도에 대한 댓글 달기를 권유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지시 따른 댓글은 압박수단

▽윤 위원=취재 대상인 공무원이 자발적인 의사 표현 수단으로 보도 내용을 보완하는 댓글을 활용한다면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지시에 따라 억지로 나선다면 압박 수단으로 작용할 뿐 의도했던 결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댓글 달기에 매달리느라 정작 본령인 업무마저 소홀할 수 있으니까요.

▽김 위원장=정책의 피드백을 활성화할 수 있다면 의사소통의 공유화라는 순기능을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건설적 의견 교환이 아니라 아부성 댓글만 난무하게 될 경우에는 건강성을 유지할 수 없겠지요. 더구나 의도된 조작을 통해 벌 떼처럼 ‘작전’에 나선다면 과거 독재 권력이 자행했던 여론 조작과 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

▽최 위원=사리 분별 능력이 부족한 세대에게 ‘댓글은 좋은 것’이란 정서를 확산시켜 너도나도 덤벼드는 등 부작용을 빚게 되지나 않을까요.

―악성 댓글을 줄이면서 댓글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있다면….

포털 자정 노력엔 한계

▽이 위원=최근 포털 사이트마다 나름의 자구책을 강구한다고 들었습니다. 특정 표현을 걸러 내는 필터링 기능을 개선하고 건전한 댓글 달기 캠페인을 펴는가 하면 실명 가입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도입하고 있지요. 누리꾼 스스로 건전한 댓글 문화 정착을 위한 자정 노력을 기울이는 방법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하는 의문은 남습니다.

▽최 위원=기술적 장치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결코 아니라고 봅니다. 사업자는 많은 접속을 유도해 수익 구조를 창출해 내는 과제와 함께 윤리적으로 깨끗하게 운영할 의무도 지닙니다.

▽윤 위원=강성의 악성 댓글과 온건 합리적 댓글이 맞붙으면 현실적으로 악성 댓글이 공간을 지배하게 됩니다. 온건한 댓글은 침묵하거나 마음 상하면서까지 싸우기 싫다며 떠나 버리는 경향을 보이거든요. 실명제를 시행하는 방법도 있지만 익명성이 주는 긍정적 기능이 사장될 우려가 있습니다. 대규모 공공 공간에서는 실명 인증을 요구하는 대신 소공간에서는 익명을 허용하는 차별화 적용도 검토해 볼 만합니다.

법으로 경각심 일깨워야

▽김 위원장=정보의 정원에서 독초를 뽑고 화초를 가꿔 나가자면 사법적 강제력을 동원해 처벌함으로써 경각심을 일깨울 필요가 있습니다. 관용과 침묵만으로는 ‘악화(惡貨)에 의한 양화(良貨)의 구축(驅逐)’ 현상을 막을 수 없습니다. 사이버 공간의 황폐화는 인터넷 강국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윤리적 준비를 제대로 못한 결과입니다. 기술과 기능만 강조했지 이를 뒷받침해 줄 정신과 윤리는 갖추지 못했으니까요. 정규 교육시스템을 통해 어릴 때부터 윤리적 법적 소프트웨어를 갖추도록 하는 일도 서둘러야 합니다.

정리=김종하 기자 1101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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