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호 칼럼]몽골의 李泰俊 기념공원

  • 입력 2006년 8월 10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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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존경하는 국악인 한명희 교수는 좀 엉뚱한 데가 있는 분이다. 나이는 내가 위지만 행동거지며 마음 씀씀이를 보면 한 교수가 단연 어른스럽다. 언제나 한복의 정장 내지 개량 한복 차림으로 나서는 그 옷 태가 그리도 점잖다. 내 어릴 적에 보던 세상에도 의젓한 우리네 할아버지들의 옛 모습을 연하의 한 교수에게서 찾아본다는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다.

그런 분이 6·25전쟁을 가장 애절하게 추모하는 노래 ‘비목’의 작사자이자 또 해마다 전방의 산골짜기를 찾아가 ‘비목 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는 사실부터 좀 엉뚱하다. 그뿐만 아니라 연례적으로 예술인들을 인솔해서 중앙아시아의 여러 오지를 찾아가 문화교류사업을 주재해 오고 있다는 것도 그의 풍모와는 다른 엉뚱한 행각이다

말을 많이 하기보단 눈을 많이 깜짝거리는 어눌한 한 교수가 이번에는 무려 100명의 문화계 인사를 이끌고 왕복 7시간 비행거리의 울란바토르에 가서 ‘대몽골 건국 800주년’을 축하해 주기 위해 ‘초원의 영고(迎鼓)대회’라는 ‘나라음악 큰 잔치’를 베풀었다. 이만저만한 거창한 프로젝트가 아니다. 그런 엄청난 일을 눈만 깜짝깜짝하면서 소리 없이 꾸며 내는 한 교수를 보면 ‘말은 어눌하되 행동은 날렵한(訥於言 敏於行)’ 현대판 군자(君子)상을 보는 것도 같다.

몽골 초원에서 베푼 음악잔치에 대해선 동아일보 7월 31일자에 전승훈 기자의 자상하고 빼어난 르포가 이미 실렸으니 여기에 다시 사족(蛇足)을 달지는 않겠다. 다만 100명의 일행에 묻혀 간 한 여름나그네로서 그곳서 견문한 얘기 하나를 여행의 낙수(落穗)로 적어 보련다.

무식의 소치로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또 다른 ‘이태준’의 존재를 이번에 몽골에 가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소설가 이태준이 아니라 의사 이태준(1883∼1921). 1911년 세브란스(현 연세대)의 제2회 졸업생 여섯 명 가운데 한 사람인 이태준 박사는 재학 시절에 고문 후유증으로 입원 치료 중인 도산(島山) 안창호 선생을 만나 깊은 감화를 받고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을 한다. 의사(醫師) 이 박사가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한 의사(義士)가 된 계기였다.

후에 임시정부 부주석이 된 처사촌 김규식(金奎植) 박사의 권유로 몽골에 들어간 이 박사는 그곳서 병원을 개업하여 ‘신의(神醫)’로까지 숭앙되면서 몽골 마지막 황제 보그드칸의 주치의가 되고 그 나라의 최고훈장도 수여받는다. 그러면서 그는 다른 한편으론 상하이 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을 대주고 헝가리의 폭탄 제조 기술자를 섭외하여 무기를 제조해서 공급하기도 했다. 그러다 이 박사는 1921년 일본군과 연합한 백러시아군에 체포돼 38세의 짧은 생애를 마치게 된다.

이 박사의 행적은 몽골이 사회주의 국가로 있던 오랜 세월 동안 잊혀져 있었다. 그러다 자유화 이후 1990년대 후반에 몽골에서 활동하던 연세대 의료봉사단이 그 행적을 추적하면서 비로소 국내에도 알려지게 됐다. 다행스러운 것은 지금은 울란바토르를 찾는 관광객이 반드시 한번 들르곤 하는 전망 좋은 자이승 전승기념탑 밑의 대통령궁 가까이에 2000년 3월 몽골 정부가 2000평의 터를 제공해서 ‘이태준 열사 기념공원’이 만들어졌다는 것. 그곳엔 이 박사의 행적을 알리는 묘비와 조형물이 마련됐으나 아직까지 유해는 찾지 못해 몽골 정부에서 현상금을 걸고 수습에 나서고 있다던가….

흐뭇한 얘기는 이 기념공원 안에 ‘황사 방지를 위한 동아시아 시민 네트워크’ 회원들이 심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다. 울란바토르 주변의 대평야는 초원이지 사막은 아니다. 250만 명의 몽골 국민을 먹여 살리는 2500만 마리의 가축이 풀을 뜯어먹는 푸른 초지이지 누런 모래벌판은 아니다. 나무는 얼마든지 심을 수 있고 자랄 수 있는 대평원이다.

한국이 기회의 땅 미래의 몽골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 정부나 민간이 나서 ‘몽골 이태준 종합병원’ 같은 걸 건립하면 어떨지. 또는 울란바토르에 ‘이태준 서울의 숲’ 같은 친환경 테마파크 건설 등도….

최정호 객원 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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