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수정]법안 미루기에 민심 멍든다

  • 입력 2006년 6월 3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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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만 빨리 통과시켜 줬어도 마음이 이렇게 바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시험 날짜가 5개월이 채 남지 않았잖아요.”

조모(20·여) 씨는 200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MP3플레이어를 갖고 있다가 부정행위자로 간주돼 시험 무효와 함께 2년간 수능 응시 자격을 박탈당했다.

조 씨처럼 지난해 수능에서 휴대전화와 MP3플레이어 등을 수거할 때 제때 내놓지 않아 부정행위자로 간주된 수험생은 38명. 단순히 규정을 위반한 수험생에게 2년이나 응시 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여론에 따라 당해 시험은 무효로 하되 올해 수능은 치를 수 있도록 이들을 구제하는 내용의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얼마 전 국회 교육위원회를 통과했다.

법안이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통과해야 하는 절차가 남아 있지만 교육위를 통과했다는 소식을 들은 조 씨는 일단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국회에 대한 섭섭함도 털어놨다.

조 씨는 “지난해 말부터 구제하라는 얘기가 나왔는데 수능 공고일인 7월 7일을 겨우 열흘 앞두고 일이 진행된 것 같아 아쉽다”며 “6월에도 통과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공부할 의욕도 안 생겼고, 한때는 대학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38명 중 한 명인 이모(21·여) 씨는 법안 통과를 기다리다 지쳐 얼마 전 유학을 갔다.

이 씨의 부모는 “그 얘기라면 다시 꺼내고 싶지 않다”며 “법안 통과도 안 될 것 같고, 아이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아예 수능을 보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국회의원들이 정쟁으로 민생법안 통과를 미루는 사이에 누구는 가슴 졸이며 잠 못 이루고, 또 다른 누군가는 한국을 떠나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학교 급식을 직영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학교급식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사상 최대의 급식 중단 사태로 민생 관련 법안에 무신경했던 국회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고, 그제서야 2년째 표류하던 관련 법안을 30일 통과시키기로 여야가 합의했다.

국회는 뒤늦게 할 일을 했지만 이들 수험생은 아직 마음의 상처를 씻지 못했다. 정말로 국민의 고충에 귀 기울이고, 제때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국회로 거듭났으면 한다.

신수정 교육생활부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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