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얘기하면 노 대통령은 브라이언 멀로니 전 캐나다 총리에 대해 인물평을 하거나 그의 리더십을 평가하려 한 게 아니고, 국가의 장래와 국민에게 진정으로 책임지는 자세로 연방부가세(GST·Goods and Services Tax) 도입을 결정한 그의 결단을 보자고 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 비서관은 언론을 향해 “본질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답답한 얘기를 하고 있다”고도 비난했다.
노 대통령도 이날 청와대에서 6·10민주항쟁 관계자들과 만찬을 하면서 “때때로 칭찬만 받을 수 있는 일과 국가적으로 꼭 해야 할 일 사이에 충돌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역시 멀로니 전 총리 얘기를 꺼낼 때 했던 말이다.
그러나 우선 김 비서관의 얘기는 사실과 다르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오찬간담회를 하면서 “멀로니는 결과적으로 당을 몰락시켰지만 캐나다를 구했다”고 평가했다.
또 1993년 총선에서 멀로니의 진보보수당(PCP)을 단 2석의 미니 정당으로 추락시키고 대승을 거둔 자유당의 장 크레티앵 총리와 비교하면서 “누가 진정한 지도자냐”라고 되묻기도 했다. 멀로니 전 총리에 대한 인물평이자 그의 리더십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였다.
멀로니 전 총리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도 ‘아전인수(我田引水)’에 가깝다. 노 대통령과 청와대는 멀로니 당시 총리가 불과 2년 뒤에 있을 총선에서 ‘필패 카드’가 될 것이 분명함에도 ‘국가의 장래와 국민에 대한 책임’ 때문에 GST 도입을 결정했다고 말하고 있다. 과연 그랬을까?
멀로니 총리는 1993년 사퇴하기 전까지 두 번에 걸쳐 총리로 재임하면서 연방 적자를 세 배나 불려놨고, 150만 명이 일자리를 잃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또 1993년 총선을 앞두고 퀘벡 분리주의 그룹과 동맹을 맺을 만큼 선거에 ‘다걸기(올인)’를 했다. 일종의 지역감정 전략이었다.
적어도 노 대통령의 말처럼 결과적으로 선거의 패인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GST 도입 결단을 내렸다고 평가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크레티앵 전 총리의 회고록 ‘위대한 캐나다를 꿈꾸며’에는 GST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멀로니 전 총리의 헌법 개정 시도 전략이 선거의 최대 쟁점이었다는 회고만 있다. GST가 멀로니 전 총리의 최대 패배 원인이 됐다는 청와대 설명과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올 1월 총선에서 집권에 성공한 스티븐 하퍼 총리는 깨끗한 정부와 ‘국민 세금에 대한 존경’을 내걸고 국민의 심판을 구했다. “그건 우리 돈이다(It's our money)”가 하퍼 정권의 캐치프레이즈였다. 하퍼 총리는 현재 7%인 GST를 5%까지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멀로니 전 총리가 GST로 구했다는 캐나다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김창혁 기자 chang@donga.com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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