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 카페]IT시대와 조선시대

  • 입력 2006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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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어디선가 군홧발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소총을 들고 다가오는 7, 8명의 미군이 보였다. ‘나 영어 못하는데…’ 하는 걱정과 함께 공포가 엄습했다. 하긴 수상한 사람이 군부대 근처 땅을 사진 찍고 있으니 미군이 출동할 만도 했다. 통역을 맡은 카투사에게 정부 조사업무 중이라고 얘기했으나 미군들은 가방을 뒤지고 사진기를 확인했다. 주변 수색까지 마친 뒤에야 부대로 돌아갔다.”(한국자산관리공사 김성태 씨)

최근 경기 의정부시 고산동 일대에서 국유재산 실태 조사를 하던 김 씨가 겪은 일화입니다.

국유재산 실태 조사는 전국의 국유지 69만8000필지(1580km²)가 현재 어떤 상태인지 알아보고 활용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재정경제부가 시행하는 사업입니다.

전수(全數)조사 업무는 얼핏 쉬워 보이지만 전국에 흩어져 있는 모든 대상을 조사하다 보니 김 씨처럼 조사원들이 뜻밖의 상황을 경험하기 일쑤죠.

개한테 물리기도 하고 벌에도 쏘입니다. 차가 도랑에 빠지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조사 받는 사람들의 불친절에 약이 오르기도 한답니다.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이 발달한 시대라지만 정부의 전수조사는 대면 접촉과 육안 식별이라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29일 끝난 서비스업 총조사에 투입된 조사원들도 ‘험한 꼴’을 많이 당했습니다.

서비스산업 부문 257만 개 사업체 현황을 조사하는 서비스업 총조사에는 2만3000명의 현장 조사원이 활동했습니다.

유흥업소가 많은 서울 종로지역을 맡은 최정숙 씨는 “다음에 오세요”라는 말과 함께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한 업소에서는 첫 손님을 받기 전에 왔다며 소금을 뿌렸다고 하네요. 낮에 가면 저녁에 오라고 하고 저녁에 가면 새벽에 다시 오라고 하고….

조사원들은 지도를 외운 뒤 현장에 나가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딘지 알지 못하는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는 마을 이장에게 달려간다고 합니다.

한 조사원은 “인공위성을 띄우는 세상이지만 마을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장이 가진 정보를 따라가지 못 한다”고 하더군요.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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