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동관]해리 왕손

  • 입력 2006년 4월 25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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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카르타고와 벌였던 제2차 포에니전쟁(기원전 218년∼기원전 202년) 중 로마의 집정관(군 총사령관 격)으로 최전선에 나가 싸운 사람은 25명이었다. 이 중 8명이 전사했다. 로마는 또 20년 기한에 무이자인 전시국채(戰時國債)를 발행해 부유층과 원로원 의원 등 고위층에 할당했다. 로마사(史) 전문가인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제국 1000년 번영의 비결로 꼽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상류층의 도덕적 책임)다.

▷조선시대 임금들은 전란이 나면 도망가기 바빴다. 그러나 목숨과 재산을 바쳐 싸운 명문가도 많았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 3부자가 전사한 고경명(高敬命) 선생 가문, 한일강제합방이 되자 6형제가 지금 돈으로 1000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처분해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벌인 이시영(李始榮) 전 부통령 가문도 그렇다.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가훈을 지켜 12대에 걸쳐 만석꾼 지위를 지킨 경주 ‘최 부잣집’도 있다.

▷마약복용 등으로 말썽을 피워 온 영국 찰스 왕세자의 차남 해리(21) 왕손이 최근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아프가니스탄 최전방 근무를 자원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할아버지 필립 공, 공군 조종사로 근무했던 아버지 찰스 왕세자, 1982년 포클랜드전쟁 때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던 삼촌 앤드루 왕자로 이어지는 왕실 전통을 따른 것이다. 영국 왕실이 때로 추문(醜聞)에 시달리면서도 국민의 애정을 잃지 않는 비결이기도 하다. 지난해 미들섹스대의 심층 조사 결과 영국 왕실의 ‘사회적 책임 이행도’는 55%로 유엔(50%)보다 높게 나왔다.

▷로마는 부패와 사치라는 ‘내부의 적(敵)’ 때문에 멸망했다. 마침 국가청렴위원회가 중고교생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78%가 ‘우리 사회는 부패했다’고 답했다. 그런데도 정치권에서는 불법 공천헌금을 ‘특별 당비’라고 우기는 등 도덕불감증이 만연해 있다. 사회의 내부 붕괴를 막기 위해서도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엄한 ‘표의 심판’을 해야 한다.

이동관 논설위원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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