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영언]李강철과 鄭태인

  • 입력 2006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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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참모의 덕목(德目)을 얘기할 때 ‘비서는 입이 없다’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측근의 입놀림은 대통령의 허물이 되니 조심하라는 경구(警句)로, 현직(現職)은 물론, 전직(前職)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하지만 요 며칠 노무현 정부의 전현직 참모들의 말과 처신을 보면 입이 없기는커녕 그 반대다.

대통령국민경제비서관을 지냈던 정태인 씨의 잇단 독설(毒舌)은 입에 담기도 민망하다. 그는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추진은 임기 내에 뭔가 업적을 남겨 보려는 노 대통령의 조급증 때문에 시작된 전형적인 한건주의다. 노 정부는 제 정신이 아니다. 미쳤다고 볼 수 있다”고 직설적인 비판을 쏟아 냈다. 함께 근무했던 청와대 386 비서관들의 독선과 부도덕성에 대해서도 격하게 비난했다.

할 말이 있으면 현직에 있을 때 해야 옳다. 물러나서 몸담았던 곳을 향해 막말을 쏟아 내는 것은 자기부정이다. 권력 밖에 나가 생각이 바뀌었다면 공식 회견 등을 하고 당당하게 그 이유를 설명해야지, 뒤에서 비수(匕首)를 꽂는 방식으로 비난하는 것은 비겁하다. 어쩌면 말 많은 청와대 참모들 사이에서 배운 게 독설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온갖 자극적인 말을 다 해 놓고 파문이 일자 뒤늦게 진의(眞意)가 잘못됐다고 해명한 것도 평소의 청와대를 닮았다. 더구나 한미 FTA는 국익(國益) 차원에서 반드시 추진해야 하는 국가적 과제다. 친미(親美)니 반미(反美)니 하는 단순 논리로 재단할 사안이 아니다.

이강철 대통령정무특별보좌관이 청와대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횟집을 낸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이 씨는 이 횟집에 대해 ‘집사람이 하는 것’이라거나 ‘먹고살기 위한 생계형’이라고 했으나 꼭 그 장소여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 씨는 2004년 총선에서 낙선한 뒤 대통령시민사회수석비서관이 됐고, 지난해 재·보궐선거에서 낙선한 뒤에는 무보수 명예직인 정무특보로 임명됐다.

그처럼 대통령 신임이 두터운 ‘왕 특보’가 권부(權府) 코앞에 횟집을 냈는데 말이 없을 리 없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설령 대통령이 권했더라도 피해야 했다. 대통령과 가깝다는 것을 과시하자는 것인가, 그렇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만큼 도덕적으로 깨끗하다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권력의 사랑방’을 만들어 놓고 정치 장사를 하겠다는 것인가. 이러니까 “나를 통하지 않고는 대통령 만날 꿈도 꾸지 마라”는 뜻이라는 누리꾼의 해석까지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도 부산시장 선거 여당 후보인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수산업 진흥을 위해 아주 좋은 일”이라고 거들고 있으니 그 밥에 그 나물이다. 이런 상식을 뒤엎는 이들이 대통령을 에워싸고 있었으니 정치가 조용할 리 없다.

옛 선조들은 벼슬에서 밀려나면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도성(都城)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았다. 현직에서 쓴소리를 자주 했던 사람도 자리를 떠난 후에는 말 없이 임금이 성군(聖君)이 되기를 빌었다. 궁궐 옆에 음식점을 내고 임금이 불러 주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자신을 내쳤다고 임금을 비방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정 씨의 훼절(毁節)과 이 씨의 횟집을 보면 이 정권에선 그런 최소한의 상식도 순리(順理)도 통하지 않는 듯하다. 그러고서도 개혁과 도덕을 입에 달고 사는 게 이 정권 사람들이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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