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X파일]국악당 설계하다 ‘득음’?

  • 입력 2006년 3월 17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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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몇 안 되는 전통 음악당 설계자인 한찬훈 교수. 악기에서 막 튀어나온 소리의 생동감을 보존하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며 클래식에서 국악으로 음악 취향까지 바꿨다. 사진 제공 한찬훈 교수
국내에 몇 안 되는 전통 음악당 설계자인 한찬훈 교수. 악기에서 막 튀어나온 소리의 생동감을 보존하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며 클래식에서 국악으로 음악 취향까지 바꿨다. 사진 제공 한찬훈 교수
“이게 뭐하는 짓이오? 내 평생 20년 이상 연주했어도 이런 고역은 처음입니다.”

처음에 국악인들은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어리둥절해 했다. 아무 소리도 새어 나가지 않는 사방이 꽉 막힌 방에 가둬놓고 몇 시간씩 계속해서 연주를 하게 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 악사님은 지금 엄청 중요한 일을 하고 계신 거라니까요.”

우리 소리에 맞는 국악당을 설계해 보겠다는 욕심은 ‘왜 국악을 밀폐된 서양식 극장에서 연주할까’란 궁금증에서 출발했다. 4년 전 국악당을 설계해 달라는 의뢰를 받은 때부터 줄곧 품어온 의문이었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정악이나 궁중악은 대궐 뜰이나 큰 행차에서나 했지 요즘처럼 밀폐 공간에서는 연주하지 않았다. ‘음악이 다르면 공간도 달라야 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정작 문제는 내 자신이 국악에 문외한이란 사실이었다. 물론 국악당 설계 양식에 관한 어떤 정보도 있을 리 만무했다. 하는 수 없이 그동안 자처해 온 클래식 애호가의 틀을 벗고 국악을 들으며 귀를 씻어내기 시작했다.

우선 소리가 공간에서 어떻게 퍼져 나가는지를 알아야 했다. 악기별로 국악연주자들을 섭외해 닥치는 대로 연주를 부탁했다.

“한 번 더 부탁드려요.”

“어허, 이러시면 곤란한데.”

어려운 부탁을 할 때마다 국악에 대한 연주자들의 애정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오히려 그들이 더 헌신적인 자세였다.

악기 주변에 수십 개에 달하는 마이크를 달아 모든 방향으로 나가는 소리를 채집하고 또 채집했다. 똑같은 소리를 밤새워 몇 시간씩 계속 듣고 있자면 자연스레 귀가 멍해지고 정신이 혼탁해진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 소리에 맞는 국악당 설계기준의 가닥을 잡을 수 있었다. 우리 소리에 맞게끔 밀폐된 공간에서도 소리가 고르게 퍼지고 남아 있는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해 주는 구조를 곳곳에 배치할 필요가 있었다. 실험에서 얻은 결과는 곧바로 국악당 설계에 적용됐다. 그 결과물이 바로 부산국립국악원이다.

지금도 처음 보는 악기를 대할 때면 ‘어떤 소리가 날까’를 넘어 ‘이 악기 연주에 딱 맞는 공간은 어떤 구조일까’라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늦깎이로 얻은 심각한 직업병이다. 만일 연주 공간도 하나의 악기라고 친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큰 악기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우기면 통할까.

한찬훈 충북대 공대 건축공학과 교수 chhaan@chungb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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