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장영수]‘청맥회’라는 모임, 왜 필요했을까

  • 입력 2006년 3월 14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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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이란 공적 직무, 즉 사익이 아니라 공익에 봉사하는 직무를 의미한다.

공직을 담당하는 공직자에 대해서는 높은 도덕적 기준이 요구된다. 사인(私人)의 경우에는 그의 행동이 미치는 영향이 자기 자신과 가족 및 주변의 몇몇 사람에게 한정되지만 공직자와 같은 공인(公人)의 경우에는 그의 행동이 국가와 국민 전체에 커다란 파급 효과를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직자들의 윤리는 법을 통해 강력하게 요구되기도 한다. 공직자들의 재산등록 및 공개, 선물 수령의 신고, 퇴직 후 유관 사기업에 대한 취업의 제한 등을 규정하고 있는 공직자윤리법이 대표적인 예다. 또한 공인에 대해서는 일반 시민들과는 달리 성명권, 초상권을 비롯한 사생활에 관한 권리에 있어서도 더 많은 제한이 인정된다.

그러나 법에 의해 강제되는 최소한의 공직윤리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최근 이해찬 총리나 최연희 의원이 곤경에 처해 있는 것도 행위의 위법성 이전에 공직자의 도덕성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분노 때문이다. 모든 공직자가 성인군자일 것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공직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일반인 이상의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도 결코 무리한 요구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최근 노무현 정부 탄생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 산하단체 등에 진출한 인사들의 친목 모임이라는 ‘청맥회’의 회원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순수한 친목모임이라는 청맥회에 대해서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또 다른 친목모임이었던 ‘하나회’를 아직 기억하고 있는 많은 국민은 ‘청맥회’가 혹시 그와 유사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둘째, 청맥회라는 모임이 필요했던 이유가 과연 무엇인지가 분명치 않다. ‘참여정부의 국정 철학 전파와 국민 참여 유도’를 실천강령으로 한다고 했는데, 과연 그것이 공기업의 이사, 감사 등이 모여서 친목모임을 만들 이유로 설득력이 있을까?

셋째, 청맥회의 회원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에 대한 의혹이 있다. 정부 산하기관에 이른바 낙하산 인사를 통해 진출한 사람들이 증가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친목단체를 벗어나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갖는 이익집단으로 성장하기 위한 것인가?

아직은 청맥회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말 그대로의 ‘관심’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국민이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따듯하지 않다. 만일 청맥회가 사회봉사를 위한 모임이었다면 어땠을까? 만일 청맥회가 정부 산하단체의 공적 기능에 대해 발전적 고민을 함께 나누고 이를 시민들과 함께 토의하는 모임이었다면 또 어떤 반응이 있었을까?

대부분의 공직은 권력과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권력의 한쪽 끝을 잡고 있는 것이 국민이고, 다른 쪽 끝을 잡고 있는 것이 대통령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직자들이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민주국가의 권력은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도 국민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

청맥회를 만들고 이를 통해 활동한 사람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그러나 적어도 국민이 쉽게 납득할 수 있는 목표와 활동을 보여 주지는 못한 것 같다. 아무리 친목모임이라 하더라도 공직자들의 모임, 그것도 청맥회와 같은 대규모 조직에는 일반 시민과는 다른 공직윤리가 요구되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기에 따라 청맥회는 작은 문제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것은, 바닷물 한 모금으로 바다 전체의 짠맛을 느낄 수 있듯이 노무현 정부 전체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되기 때문이고, 작은 구멍 하나로 제방 전체가 붕괴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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