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92>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2월 16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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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이놈, 미련한 항우야. 그래도 한때 과인과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싸운 정이 있어 스스로 깨닫기를 바랐더니, 아무래도 너는 목에 시퍼런 칼날이 떨어져야 비로소 네가 죽는 줄을 알겠구나.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하늘의 호생지덕(好生之德)을 빌기는커녕 오히려 이 무슨 방자한 헛소리냐?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느니라.”

그렇게 갑자기 사람이 바뀐 듯 엄하게 패왕을 꾸짖는데 묘하게도 전에 없던 위엄이 넘쳐흘렀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들은 패왕은 더 참지 못했다. 한왕의 말은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좌우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가자. 내 오늘 저 주둥아리만 살아 있는 늙은 장돌뱅이놈을 죽이지 못하면 결코 초나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그리고는 전군을 휘몰아 한군을 덮쳤다. 전처럼 3만이 한 덩어리가 되어 한왕을 노리며 벼락 치듯 쪼개고 드는 방식이었다.

하도 여러 번 되풀이당해 온 전법이라 한군도 대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한왕이 탄 수레는 뒤로 빠지고 철기(鐵騎)와 보갑(步甲)을 이끈 한나라 장수들이 겹겹이 막아섰다. 그러자 한군의 전면은 그야말로 철벽이 가로막은 듯하였다.

하지만 성난 패왕이 벼락같은 고함과 불길이 뚝뚝 듣는 듯한 눈길로 앞장을 선 데다, 살아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매섭게 전의를 다진 초나라 장졸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그 뒤를 받치니 아무리 철벽이라도 소용이 없었다. 대쪽이 쪼개지듯 이내 한군 한가운데가 큰길이라도 난 듯 갈라졌다. 놀란 한나라 장수들이 저마다 군사를 꾸짖어 패왕의 앞길을 가로막아 보려 했으나 그저 그 닫는 속도를 조금 늦출 수 있을 뿐이었다.

오래잖아 패왕이 이끄는 초군 선봉에게 아직 싸움터를 빠져 나가지 못한 한왕의 수레가 저만치 보였다. 패왕이 다시 벼락같은 호통으로 근처에 있는 한군의 얼을 빼놓았다.

“유방은 어디로 달아나느냐? 어서 그 늙은 목을 내놓지 못하겠느냐?”

그러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머릿수만 믿고 기세를 올리던 한군은 한층 더 겁먹고 어지러워졌다. 숱한 한나라의 맹장들도 초군의 매서운 공세에 몰리다 이리저리 흩어져 더는 한왕의 방패가 되지 못했다. 거기다가 뒤를 가려주는 군사도 엷어 자칫하면 한왕의 수레가 패왕의 오추마에게 따라잡힐 판이었다.

싸움을 거기까지 몰아간 패왕 항우는 더욱 힘이 솟았다. 잘 되면 바로 한왕 유방을 잡아 죽여 모든 일을 끝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칠십 근 철극을 부젓가락 놀리듯 휘두르며 누런 덮개를 씌운 한왕의 수레를 뒤쫓았다.

하지만 그 싸움에서 패왕이 바로 헤아리지 못한 게 하나 있었다. 한왕이 진성 북쪽에 남겨둔 관영과 조참의 군사가 그랬다. 그 3만은 패왕이 짐작한 것처럼 그곳에 매복하고 있으면서 초군이 유인책에 말려들기를 기다리는 군사들이 아니었다. 패왕의 전법을 오랫동안 살펴온 장량이 바로 그렇게 한군이 몰리게 되는 때를 위해 남겨두도록 권한 병력이었다.

“바로 지금이오. 어서 가서 적을 맞받아치시오. 항우가 아무리 날뛰어도 결코 밀려서는 아니 되오. 두 분 장군께서 급한 물머리를 막아주지 않으면 우리 한군은 모두 초군의 흉흉한 기세에 휩쓸려 무너져 내리고 말 것이오.”

초군과 한군이 어울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진평과 함께 뒤처져 있던 장량이 그렇게 관영과 조참을 재촉해 내보냈다. 관영이 이끌고 있던 군사는 낭중(郎中)기병으로 이루어진 기마대가 주력이었고, 조참의 군사도 변화에 재빨리 응하기 위해 한껏 몸을 가볍게 하고 있던 정병들이었다. 머물고 있던 곳에서 뛰쳐나가 너무 늦지 않게 싸움터에 이르렀다.

관영과 조참이 이끈 두 갈래 군사가 갑자기 뒤에서 치고 나오자 기세 좋게 밀고 들던 초나라 장졸들도 잠시 움찔했다. 하지만 이미 그들이 있다는 것을 패왕에게서 들어 알고 있어서인지 겁먹거나 움츠러들지는 않았다. 밀고 나오던 기세 그대로 관영과 조참이 이끈 군사를 맞았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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