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연수]강남으로 몰리는 사람들

  • 입력 2006년 1월 25일 03시 11분


코멘트
1년간 해외 연수를 가게 됐다는 말에 몇몇 지인이 대뜸 “기회가 왔다”고 충고했다. 이참에 서울 강북의 집을 팔고 강남에 집을 사두라는 것이다.

강남의 30평형대 아파트 전세금이 2억5000만 원 정도이니까 전세 끼고 강북 집 팔고 대출 받아 사 두면 몇 년 뒤 후회는 안 할 것이란다. 돌아와서 2, 3년은 변두리 싼 전셋집에서 고생할 각오를 하고 말이다.

8·31 부동산 종합대책으로 세금이 늘어나는 데다 강남 집값도 어찌될지 모른다고 했더니 한심하다는 듯 쳐다본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한두 번 겪어 봤느냐는 것이다. 그때만 잠시 주춤할 뿐 다시 오르는 게 강남 집값인 데다 세금 올라봐야 집값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솔깃한 제안이었다. 강남에는 좋은 학원도 많을뿐더러 똑같이 5년을 소유해도 집값은 두세 배 뛰는데 노후대책이 마땅찮은 소시민이 쏠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쑥스럽게도 개인 얘기를 꺼낸 것은 강남으로 가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이런 사연을 가졌으리라는 생각에서다.

8·31대책이 나온 지 5개월이 지났다. 종합부동산세와 다주택 보유자의 양도소득세를 강화하는 내용의 법률도 대부분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예상한 것처럼 ‘천지개벽’이 일어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2003년 10·29대책 이전 수준으로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던 정부의 기대가 실현될 전망도 아직은 요원하다.

요즘 강남에는 집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다시 줄을 섰다고 한다. 강남 주요 지역의 집값은 8·31대책 전보다 올랐으며 경기 용인시나 성남시 분당지역의 집값도 들썩거리고 있다.

정부는 지난 한 해 동안 부동산 투기를 집값 상승의 주원인으로 지목하며 법을 고친다, 세무조사를 벌인다며 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최근 강남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기회만 기다리던 실수요자가 많다고 한다. 세금을 올리면 2주택, 3주택자들이 대거 집을 내놓아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던 정부 예측은 빗나간 셈이다.

그렇다고 더 강한 처방을 내놓는 것은 고수의 처방이 아니다. 정부가 조바심을 낼수록 집값이 더 올랐던 경험을 우리는 갖고 있다. 강남지역 집중 단속에 쓸 행정력과 재원이 있으면 다른 지역을 살기 좋게 만드는 데 쓰는 것이 오래 걸리지만 옳은 방법이다.

옛말에 ‘유능제강(柔能制剛)’이라고 했다.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을 이기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말이다. 상대방의 힘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그 힘을 역이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것은 동양 무술의 기초다.

시장의 흐름과 개인의 이익 추구를 범죄시하거나 꺾으려고만 하지 말고 반대로 잘 활용해야 정책이 성공한다. 다른 지역에서도 충분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면 누가 많은 돈을 들여 강남에 살려고 할까.

8·31대책은 아직 진행형이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정부 주도로 공영개발하고 이런 지역에서 10년간 아파트 매매를 금지하는 것과 같은 조치들이 남아 있다. 쓸데없는 행정의 비대화를 초래하고 편법과 부작용을 낳을 이런 무리한 정책들이 본격화될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해진다.

주위의 지인들에겐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강북의 교육 여건과 생활환경이 좋아질 때까지 좀 더 버텨봐야 하지 않을까.

신연수 경제부 차장 ysshi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