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오명철]문제는 ‘노선’ 아닌 ‘함량’

입력 2005-11-17 03:07수정 2009-10-08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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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고위 공무원과 점심을 같이했다. 특별한 현안도, 부담도 없는 자리였다. 청와대가 공직자들의 특정 언론에 대한 기고와 인터뷰를 제한하면서 막강한 대권주자들의 인터뷰까지 부담을 주는 마당에 ‘적대적 언론’의 현직 간부를 불러준 것이 고마워 “신상에 지장이 없겠느냐”고 했더니 그가 멋쩍은 듯 씩 웃었다.

언론 경력 30년의 다른 언론사 선배도 앞서 비슷한 심정을 토로했다. “밥 술 얻어먹자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명색이 중앙 일간지의 논설 책임자인 내가 대통령을 직접 만난 것은 대통령 임기의 반환점을 넘긴 8월 31일 중앙언론사 논설 및 해설 책임자 모임이 처음이다. 이건 좀 심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동석했던 다른 중견 언론인들도 “정부와 언론의 관계가 이처럼 팍팍한 시절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현 집권층과 참모진은 언론과의 수평적 관계를 강조한다. 그렇다고 해서 의전이나 격식을 무시하거나 국제 관행에 무지해서는 안 된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에 대한 언론의 예우가 필요하듯, 수백만 독자가 있는 언론에 대한 정권의 예의 또한 소중하다.

언론계의 한 원로는 현 정부의 언론 정책에 대해 “군사 독재 시절에는 언론 탄압이 심했지만 언론을 두려워했다. 이 정부는 아예 언론을 무시하고, 언론인을 모독한다. 1980년대만 해도 웬만한 실세 장관이 아니면 언론사 부장들과 접촉하는 것도 어려워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북한의 지도자가 부른다고 남쪽의 언론사 사장들이 ‘알현’이라도 하듯 떼거리로 방북하는 것이 시대의 웃음거리였듯, 대통령과 실세 총리가 부른다고 해서 담당기자가 따로 있는데도 언론사 야전사령관인 편집, 보도국장들이 ‘열외(列外) 없이’ 공관으로 찾아가는 것 또한 모양이 좋지 않다고 그는 덧붙였다.

참여정부 국정홍보의 문제는 ‘노선(路線)’ 이전에 홍보 대상과 참모진의 ‘함량(含量)’에 있다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민주당의 존 F 케네디와 빌 클린턴은 젊고 지성적인 용모와 타고난 언변 등 자신의 매력이 최고의 홍보자산이었지만, B급 영화배우 출신인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을 미국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전적으로 스핀 닥터(Spin Doctor·홍보 참모)들의 공이었다. 레이건 대통령이 1981년 저격을 당해 병원에서 응급 수술을 받게 됐을 때 아내와 의사들에게 “여보, 내가 머리 숙이는 것을 깜빡 잊었어” “당신들 모두 공화당원이겠지요”라고 한 조크도 사실은 홍보 참모들의 작품이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대학 교수 출신의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과 학술전문기자 출신의 국정홍보처장, 운동권 출신의 청와대 대변인, 부실기업 홍보실 출신의 홍보기획비서관 등 대통령 핵심 홍보 참모진의 총체적 역량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치졸한 충성 경쟁으로 분란만 일으키는 1차원적 홍보 전략과 기법으로는 결코 언론과 국민의 마음을 살 수 없다. 대통령의 치적보다 홍보 참모들의 댓글과 행태가 더 뉴스거리가 되는 현실이 문제다.

그들의 경력과 연륜에 대한 평가는 해당 출신 집단에서조차 그다지 후한 편이 아니다. 똑같은 말을 하더라도 말하는 사람의 평소 신뢰도와 표현방식 등에 따라 효과가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 언론학의 기초 이론 중 하나가 아닌가.

신문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은연중 내세우면서 만년 친여 방송과 코드가 맞는 일부 온라인 매체에만 공을 들여온 언론 분리 전술도 이제는 재검토해야 한다. 손님 많은 데 가서 물건 팔지 않고 벽지 산골에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셈이다. 국정홍보 관련 예산을 대폭 늘리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쓸데없는 기구를 만든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다. 대통령은 모름지기 수지가 맞는 장사를 해야 한다.

오명철 편집국 부국장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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