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권희]‘新한국病’ 처방전을 또 찢지 말라

  • 입력 2005년 10월 31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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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활력이 약화되고 조로(早老) 증세마저 보이는 우리 경제가 지난주 건강진단을 한 번 더 받았다. 서울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서 국내외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국가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여러 처방을 내놓았다.

‘신(新)한국병(病)’에 대한 공통적인 진단과 처방은 이렇다. ‘원인: 지나친 정부 규제, 경직적인 노동시장, 반(反)기업 정서. 처방: 규제 완화, 노동시장 유연화, 혁신을 뒷받침할 사회적 토대 구축….’ 정신과 치료도 병행하라고 한다. ‘외국인 두려움증과 지나친 평등주의, 돈 버는 외국 기업에 대한 반감을 버려라.’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에도 이런 진단과 처방이 많았다. 2년 전 서울대 교수들이 자유시장경제에 맞는 법과 제도 정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노사문화 정착, 경제교육 활성화 등을 외쳤던 것도 그중 하나다. 표현만 다를 뿐 상황 인식은 같다.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대체로 세계 20위권이다. 세계 10∼12위 수준인 생산 무역 등 덩치와 견주어 좋은 성적이 아니다. 조사 방법 등의 문제로 순위가 하락했던 작년에 비해 올해는 성적이 좋아졌지만 김대중 정부 말기 수준으로 제자리걸음을 했다. ‘내 병은 내가 잘 안다’며 처방전을 찢어 버린 결과다.

국가경쟁력이란 한 나라가 세계시장에서 국민소득과 부(富)를 키우는 능력이다. 평가기관에 따라 개념 차이가 있지만 정부, 기업, 국민의 경쟁력의 합(合)으로 보면 쉽다. 경제상황, 인프라, 금융시장, 정부 효율성, 기업 효율성 등을 모두 감안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 간단히 말해 어떤 나라의 평균적인 기업이 다른 나라의 평균적인 기업과 맞서는 힘으로 볼 수 있다. 기업들이 활력 넘치게 사업을 추진하고 돈 벌어 미래 투자를 잘할 수 있다면 그 나라가 경쟁력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경쟁력은 기업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떤가. 노무현 정부도 출범 초기엔 규제 완화를 외쳤지만 실적은 미미하다. 수도권 공장 신증설 규제에 기업은 투자 타이밍을 잃고 만다. 공무원은 많아지고 목소리도 커졌으며 공기업은 비대해졌다. 민간은 발언권마저 빼앗기고 눈치 보기에 바쁘다.

노 정부는 기대와 달리 노조 설득에도 실패했다. 해외 투자설명회 때마다 ‘한국 노동시장은 언제 유연해지나’ 하는 단골 질문이 나온다. 정부는 늘 ‘노동시장 선진화를 추진 중’이라는 ‘정답’을 댔지만 믿음은 주지 못했다. 최근 방한한 한 독일 기업인이 한국 노조를 겨냥해 “세계적으로 20억 명의 노동자가 경쟁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라”고 일침을 가했다.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

기업 때리기는 역대 정권이 정치적 목적으로 잘 써먹었고 지금도 비슷하다. 국민정서나 개혁을 이유로 대는 것도 똑같다. 요즘은 자유시장경제 원칙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청소년은 기업과 기업인의 폐해를 우선 학습하는 상황이다.

청와대와 여당의 갈등에 따른 정치권의 소용돌이는 민생 현안들을 구석으로 밀어 낼 것이다. 집행 능력과 관계없이 인기 회복을 노린 어설픈 분배정책들이 강조될 것이다. 국가경쟁력 처방전은 또 무시되고 또 찢겨질 것인가.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면 기업인들만 좋아지는 게 아니다. 자연히 국가경쟁력도 커진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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