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영]기업 내부감사 트집잡는 통일부

  • 입력 2005년 10월 8일 03시 01분


코멘트
기업이 내부 비리를 밝혀내기 위해 감사를 했다. 비리 혐의자는 그 기업의 대표이사이며 부회장 직함을 갖고 있는 거물이다. 쉬운 감사가 아니었을 것이다. 감사팀이 느꼈을 심리적 압박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대표의 비리를 밝혀내고 감사보고서를 만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부가 뛰어들었다. 감사가 잘못됐으니 사과하라는 것이다. 생살여탈권을 쥐다시피 한 정부가 윽박지르니 기업은 별 수 없이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런 어이없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현대그룹의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에 대한 경영감사 얘기다. 감사 결과 김 전 부회장이 비자금을 조성했고 그중 50만 달러가 남북경협기금(남북협력기금의 오기) 관련 금액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 통일부가 나서서 그 돈은 남북협력기금이 아니라며 사과와 함께 책임을 지라고 요구했다.

세상에…. 기업의 내부감사보고서 내용이 틀렸다며 정부가 협박하는 일이 지구상에 단 한 건이라도 있었는지 궁금하다. 대북사업의 성격상 통일부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한 현대아산의 처지가 참 딱하다.

당초 동아일보가 감사보고서를 입수해 특종 보도했을 때 통일부는 현대아산에 직접 남북협력기금을 지원한 일이 없기 때문에 남북협력기금 유용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한국관광공사에 남북협력기금을 줬고 관광공사는 이 돈으로 현대아산으로부터 금강산의 시설물을 샀기 때문에 현대가 받은 순간부터 협력기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상황을 되돌아보자. 관광공사는 왜 금강산의 온정각과 온천장을 샀는가. 대북사업 독점권을 가진 현대아산의 자금 압박이 심해지자 정부가 남북협력기금을 지원해 주기 위해 관광공사를 통한 시설물 매입이란 방편을 동원했던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이렇게 해서 돈이 현대아산으로 건너간 뒤 관리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확실한 것은 이 돈이 남북협력기금에서 나갔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지원된 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만들었다면 형식상 현대아산 내부 문제지만 결국 협력기금을 빼먹은 것과 다를 바 없다.

통일부는 6일 발표에서는 김 부회장이 비자금을 조성한 5차례 중 4차례는 정부가 금강산 도로공사 관련 남북협력기금을 현대아산에 입금한 시기보다 이르기 때문에 비자금과 협력기금은 관련이 없다는 새로운 논리를 동원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도 현대아산에서는 김 부회장이 자금을 유용한 뒤 나중에 들어온 남북협력기금으로 채워 넣었다고 말한다.

현대아산의 한 관계자는 “통일부는 헤비급이고 우리는 플라이급인데 싸움이 되겠느냐. 침묵으로 일관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말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가지 밝혀둘 게 있다. 통일부는 마치 현대아산이 일부러 동아일보에 감사보고서를 흘린 것처럼 몰아붙이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언론이 취재원을 밝힐 수는 없지만 보고서를 현대아산으로부터 입수하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어디에서 입수했는지 통일부에서 안다면 아마도 깜짝 놀랄 것이다.

세월이 지나면 진실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통일부가 훗날 뒷감당을 어찌하려는 것인지 딱하기만 하다. 현대아산의 감사보고서와 통일부 발표문 가운데 국민이 어느 쪽을 더 믿는지 여론조사라도 해 보길 권한다.

김상영 경제부장 young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