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영]이제 2 % 남았다

  • 입력 2005년 8월 16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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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60주년을 맞아 신문 방송에 나오는 이런저런 특집을 보노라면 코끝이 찡한 이야기가 하나둘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광복 직후 담배를 만들던 전매청의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풀로 붙여 담배 완제품을 만드는 모습도 생소했지만 여공들이 작업용 풀을 손으로 찍어 먹는 모습엔 가슴이 저렸다. 너무 배가 고프다보니 밀가루로 쑤어 놓은 풀을 먹은 것이다. 이를 막으려고 풀에다 파란 염료를 타서 작업장에 제공했지만 여공들은 파란 풀마저도 거침없이 먹었다. “‘전매청 여공들은 파란 ×을 눈다’는 말이 당시 떠돌았다”는 증언이 뒤따랐다.

지금 젊은 세대에겐 낯선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부모 세대 중에는 삶의 목표가 오로지 배고픔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겨울철 쉬는 시간이면 너무 추운 교실에서 나와 양지에 몰려 햇볕을 쬐던 어린 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몇 십리 신작로 길을 걸어 친척집에 양식을 꾸러 다니던 기억 등등….

때로는 비겁해서라도 가난에서 벗어나려 했던 부모들은 기꺼이 희생을 감수했다. “내가 지게꾼을 해서라도 너만은 공부 시킨다”는 부친의 말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교육열과 근면성이 에너지로 결집돼 한국은 오늘의 풍요를 이루었다.

사실 광복 60년 동안 한국이 이룩한 경제적 비약은 경탄의 대상이다. ‘한강의 기적’이 괜한 말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국내총생산(GDP) 세계 11위, 무역량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 됐다. 이런 눈부신 성취 속에 맞은 환갑 잔칫상의 주인공은 바로 국민들 자신이다.

그러나 1류 국가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선진국이 되기에는 2%가 부족한 상태라고나 할까. 경제적으로도 더 발전해야 하고 사회 각 부문의 시스템과 국민의식도 선진국 수준에는 못 미친다.

이 시점에 우리의 경쟁상대로 동남아 국가들을 거론하는 것은 지나친 자기비하다. GDP만 비교해도 인도네시아(인구 2억4000만 명)는 한국의 3분의 1을 조금 넘고, 태국(6500만 명)은 4분의 1, 한참 발전한다는 말레이시아(2400만 명)는 5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이 세 나라에 필리핀(8700만 명)까지 합해야 겨우 한국의 GDP와 비슷해진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이만큼 이룩한 나라는 세계적으로 없다. 싱가포르는 도시국가이고 대만과 홍콩은 범중국권에 속한다. 제대로 된 국토와 인구를 갖춘 나라 중 기존 선진국의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나치게 자만해서도 안 되지만 60년 동안 스스로 이룩한 성과를 폄훼(貶毁)할 필요는 없다. 현재의 위치를 정확히 인식하고서 향후 60년을 설계하자는 것이다. 밖에서 보는 한국의 위상은 안에서 보는 것 이상이다.

지금부터는 국가적 목표를 1류 국가에 맞춰야 한다.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 그리고 식민통치의 고통을 안겨준 세계 2위 경제대국 일본이 우리가 눈높이를 맞춰야 할 나라들이다.

이들 나라처럼 되기 위해 부족한 나머지 2%를 채우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광복 60주년이란 국가적 경사를 맞은 우리가 서 있어야 할 지점이고 진정한 극일(克日)의 길일 것이다.

김상영 경제부장 you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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