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복거일]국군포로-납북자에 조국 돌려주자

  • 입력 2005년 6월 24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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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위해 죽는 것은 즐겁고 우아하다.”

자주 인용되는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이 구절보다 전쟁의 본질을 잘 드러낸 구절도 드물다. 전쟁의 원인과 성격이 무엇이든, 싸움터에 선 군인들은 궁극적으로 조국을 위해 싸운다.

당연히 조국은 그들을 기린다. 전몰자들의 묘역은 어느 나라에서나 가장 성스러운 곳이고, 중요한 싸움터마다 전적비(戰蹟碑)가 선다.

북한의 기습적 침공으로 나라가 거의 다 무너졌다가 가까스로 되세운 터라 우리에겐 기려야 할 영웅이 많다. 우리는 다짐했다. 조국을 지킨 영웅들을 잊지 않고 기리겠노라고.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저격 능선과 같은 서러운 이름들이 기억을 새롭게 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잊겠느냐고.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잊기 시작했다. 새로운 세대들은 점점 그 전쟁에 대해 아는 것이 적어졌고 그들이 자랄 수 있도록 조국을 지켜 준 영웅들을 몰라보게 되었다. 마침내 영웅들을 기리는 것조차 잊었다. 반세기 전의 ‘6·25전쟁’이야 그렇다 치고, 눈앞에서 벌어진 ‘서해교전’에서 우리 바다를 지킨 영웅들의 추도식에 정부 고위관리들이 보이지 않는 해괴한 일까지 일어났다. ‘이것이 과연 나라인가’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적 자식들을 기리지 않는 나라는 생존할 자격이 없다.

이처럼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너무 쉽게 허물었다. 산 자들은 살아가기 바쁘므로 죽은 자들을, 비록 그들이 영웅들일지라도 차츰 잊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런 변명조차 내놓을 수 없는 영웅들이 있으니, 바로 북한에 억류된 국군 포로들이다. 엄연히 적국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잊는단 얘긴가.

북한에 생존한 국군 포로들이 많다는 것이 확인되어도, 실제로 북한을 탈출하여 돌아온 노병이 복귀 신고를 해도 우리는 그냥 있었다. 북한과 온갖 명목으로 회담들을 하고 북한에 위험할 정도로 큰 자원을 지원하면서도 국군 포로들을 돌려보내라 요구하는 것조차 겁냈다. 이 같은 외면(外面)은 망각보다 훨씬 부도덕하다.

휴전 뒤 양쪽이 서로 포로들을 교환했으므로, 북한에 국군 포로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북한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북한은 국군 포로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 왔다. 납북자들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보여 왔다. 그런 북한의 태도에 대해 우리가 대응할 수단도 마땅치 않았다. 이미 2002년에 국군 포로들과 납북자들의 소재를 파악하자는 합의를 해 놓고도 전혀 협력하지 않았다.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북한도 국군 포로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게 되었고, 북한은 우리의 원조에 크게 의존한다. 이제 조국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국군 포로들과 납북자들이 조국의 보살핌을 받는 것을 막는 것은 우리 자신의 비겁과 부도덕뿐이다.

마침 22일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우리 정부는 국군 포로들 및 납북자들을 비전향 장기수들과 맞바꾸자는 제안을 했다. 이 제안은 그저 소재를 파악하자는 종전의 합의와는 달리 실질적 뜻을 지닌다는 점에서 크게 반가운 일이다. 이미 우리는 북한인 비전향 장기수들을 모두 북한에 돌려보냈고, 뒤늦게 마음을 바꾼 사람들을 추가로 돌려보내겠다는 얘기이므로, 우리로선 한껏 성의를 보인 셈이다. 여론에 떠밀려서 시늉만 내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우리 정부는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 국군 포로 문제와 함께 휴전 뒤 북한이 납치한 어부들의 송환은 중점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다른 나라에 억류된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외면하는 조국은 이미 조국이 아니다. 나라를 지키다 적군에 붙잡힌 국군 포로들에게 그런 원통함과 서러움은 특히 컸을 것이다. 반세기 동안 조국을 잃었던 영웅들에게 이제는 조국을 돌려주자.

복거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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