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병기]‘호랑이 등’에 올라탄 한국경제

  • 입력 2005년 4월 10일 18시 49분


코멘트
최근 외국 자본의 폐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자 일부 국회의원이 외국 자본을 규제하는 법률을 앞 다투어 상정하고 있다.

사실 외환위기 이후 7년간 외국 자본은 한국에서 손쉽게 돈을 벌었다. 일부 단기투기자본은 제도 미비로 한국 기업의 손발이 묶여 있던 약점을 파고들어 자기 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방법으로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다.

주식시장에서는 외국인의 투자 수익을 윤곽이나마 파악할 수 있지만 부실 채권이나 저평가된 부동산을 사들여 거둔 수익은 파악조차 불가능하다. 외국계 투자회사에 근무했던 한 교포가 “너무 쉽게 돈을 벌어 미안하다”고 말한 데서 엄청난 돈을 벌었으리라 추측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연스럽게 “국부(國富)를 너무 쉽게 내준 것 아니냐”는 반성과 ‘경제민족주의’ 정서가 생겨 날 수 있다.

그러나 그 같은 반성이 우리 내부에서 문제점을 찾는 이성적 대응으로 나타나지 않고 국수주의적 성향에 머문다면 오히려 손해는 한국이 보기 쉽다.

이미 일부 외국 언론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정당한 규제조차 경제민족주의라며 싸잡아 한국을 비난하고 있다.

흔히 경제규모가 작은 나라의 자본시장 자유화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으로 비유된다. 호랑이의 특성을 잘 아는 국가는 그 힘을 빌려 원하는 곳으로 쉽게 갈 수 있다. 그러나 호랑이의 힘과 속성을 몰라 잘 제어하지 못한 국가는 호랑이한테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게 된다. 자칫 등에서 떨어지면 잡아먹힐 수도 있다.

외환위기라는 깊은 골짜기를 한국이 빨리 건너기까지는 호랑이 역할을 한 외국 자본의 덕이 컸다. 지금 우리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할 것은 도대체 무엇이 부족했기에, 어떤 제도적 허점이 있었기에 호랑이에게 과도한 비용을 지불했는지에 대한 뼈아픈 반성이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호랑이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지도 연구해야 한다.

경제민족주의에 매몰돼 자칫 논의의 결과가 호랑이 등에서 내리겠다는 방향으로 가서는 곤란하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호랑이 등에 한번 올라탄 국가가 내리겠다고 해서 호랑이가 순순히 내려 주지도 않는다. 이것이 글로벌 경제의 실체다.

이병기 경제부 ey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