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417>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3월 28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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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만약 우리가 매복을 두었다가, 적이 그걸 알고 험한 지세에 의지하고자 정형 골짜기로 되 숨어버린다면, 그거야 말로 큰일 아니겠소?”

진여가 그렇게 말해 광무군 이좌거가 더는 다른 소리를 낼 수 없게 했다. 새벽녘에 한군이 골짜기를 나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장수들과 진채 높은 곳에 올라 정형 어귀 쪽을 바라보던 진여가 느긋하게 말했다.

“그냥 보내주어라. 한신과 장이가 던진 미끼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에도 이좌거가 그냥 보고 있지 못해 나섰다. 진여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깨우쳐 주었다.

“미끼치고는 머릿수가 너무 많고 또 항오가 아주 정연합니다. 저들을 그냥 보내 적이 우리 앞뒤에 진을 치고 서로 호응하게 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나 무엇에 홀렸는지 진여는 자신 만만했다.

“아직 한신과 장이가 움직이지 않았소. 대장군 기(旗)와 적 중군의 금고(金鼓)가 이른 뒤에 대군을 내어도 늦지 않소!”

뿐만이 아니었다. 나중에 먼저 지나간 한군이 저수((저,지,치)水) 가에 진을 쳤다는 말을 듣자 크게 소리 내어 웃으며 말했다.

“그것들이 많지도 않은 군사로 물을 등지고 진세를 벌였다고? 도대체 한신이란 더벅머리가 병법을 알기나 한다더냐? 예부터 배수(背水)는 흉(凶)이라 하였거늘.......”

그러는 사이에 어느새 날이 밝아왔다. 다시 정형 어귀 쪽에서 말발굽소리와 함성이 들리며 한군이 다가왔다. 이번에도 진여는 높은 곳에 올라가 한군의 기치와 진용을 제 눈으로 살핀 뒤에야 싸울 채비를 시켰다.

“드디어 한신과 장이가 거느린 본대가 온 모양이다. 모든 장졸은 나를 따라 적을 치러 가자! 진채에는 노약하고 병든 군졸들만 남기면 된다.”

참지 못한 이좌거가 다시 나섰다.

“승상, 아니 됩니다. 진채는 일이 잘못돼도 우리 군대가 돌아와 의지할 근거입니다. 한 갈래 날랜 군사와 용맹한 장수를 남겨 진채를 지키게 하십시오.”

“적은 먼 길을 온 3만 군사요, 우리는 쉬며 기다린 20만 대군이외다. 3만이 한 덩이가 되어 우리와 대적해도 한 목숨 건져가기 어려운데, 적은 벌써 새벽에 한 갈래를 따로 내보냈소. 그런데 이제 다시 우리 진채를 넘볼 군사를 따로 낸단 말이오?”

“그 뜻하지 아니한 곳으로 나아간다(出其不意)는 것은 군사를 부리는 이들이 즐겨 쓰는 수법입니다. 진채는 반드시 정병으로 지켜야 합니다.”

그러자 진여가 드디어 짜증을 냈다.

“저희 대장군과 중군이 우리 대군에게 모조리 사로잡힐 판에 무슨 군사를 따로 내어 우리 진채를 급습한단 말이오? 또 그리하여 우리 진채를 차지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이오? 광무군은 명색 병략을 말하는 사람으로서, 어찌 이렇게 싸움을 앞둔 대군의 예기(銳氣)를 꺾는 소리만 하시오?”

그렇게 소리쳐 이좌거를 나무란 뒤 귀찮은 듯 곁에서 떼 내어버렸다.

“정히 그렇게 싸움이 두렵거든 후군으로 가서 우리 치중(輜重)이나 잘 지키시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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