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속의 오늘]1982년 SF소설가 필립 K 딕 사망

  • 입력 2005년 3월 1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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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과연 누구인가. 당신을 둘러싼 현실이 진실이라고 믿는가. 사실은 인조인간이고 그 현실은 가상인데 그렇게 믿는 건 아닌가.’

필립 K 딕(1928∼1982).

미국의 공상과학(SF) 소설 작가인 그는 평생 실재(實在)하는 현실과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장자(莊子)가 말했던 ‘나비의 꿈’을 21세기 첨단 시공간에 부활시켰다.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임포스터, 마이너리티 리포트, 페이첵…. 그의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질 때마다 팬들을 사로잡았다. 작품마다 뛰어난 상상력과 철학적인 질문이 가득했다.

이전의 SF 작가들은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상상으로 일관했다. 딕은 처음으로 암울한 미래를 그렸다. 다른 작가들이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가져올 청사진에 관심을 갖는 동안 그는 그런 세상에서 개인이 느낄 정체성의 혼란에 몰입했다.

현실의 삶에서도 그는 혼란을 느꼈다.

쌍둥이 누이 제인은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죽었다. 고통과 불행에 대한 기나긴 강박관념이 시작됐다.

“인간과 동물의 고통은 나를 미치게 한다. 기르는 고양이가 죽을 때마다 나는 신을 저주했다.”

1955년 첫 소설 발표. 당시 그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의 연체료도 낼 수 없을 정도’로 가난에 시달렸다. 먹고 살기 위해, 각성제를 먹어가며 하루 60장씩 쓰기도 했다.

약물에 빠져 광장공포증, 공격본능, 피해망상, 신경쇠약에 시달렸다. 집이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들에게 습격당했다고 생각했고 초자연적인 존재를 만났다고 말했다.

죽기 전 10년은 클라이맥스. 그는 ‘지구 둘레를 도는 외계의 지적인 존재와 영적 교류를 하고 있다’고 여겼는데 놀랍게도 이 시기에 가장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

1982년 3월 2일 심장마비로 사망한 후 쌍둥이 누이 옆에 묻혔다. 그 자리는 그가 죽을 때까지 53년간 비어있었다.

살아있는 동안 딕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대중이 그의 진가를 알아본 건 그의 존재가 세상에서 사라진 다음이었다. 복제와 가상현실, 로봇…. 그가 상상했던 세상이 하나하나 현실화된 지금에야 대중은 그가 느꼈던 혼란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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