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원암]韓銀 섣부른 환율정책 禍 부른다

  • 입력 2005년 2월 24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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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들어 환율이 폭락하면서 주식시장에도 찬바람이 불었다. 환율이 폭락하자 수출이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면서 기세 좋게 오르던 주가도 한풀 꺾이고 말았다. 올해 경기회복의 복병은 환율과 수출에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달러 대 원화 환율이 한때 900원 선까지 내려갔던 23일, 갑작스러운 환율 폭락의 이유로 처음엔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의 유입과 당초의 예상을 초과하는 수출대금의 네고 등이 부각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국은행이 작성한 국회 보고서의 존재가 부각되면서 그 진의와 배경에 관심이 집중됐다.

한은은 이 보고서에서 외환보유액의 투자대상 통화를 다변화해 수익성을 높이겠다는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이 같은 방침이 외신을 통해 전파되자 달러화가 유로와 엔뿐 아니라 원화에 대해서도 큰 폭의 약세를 보이게 됐다. 달러화 약세가 예상되는 시점에서는 환손실을 방지하기 위한 투자 다변화 전략이 요망되며, 한은도 그 필요성을 여러 번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전략이 중앙은행의 문서화된 정책이라고 외신이 보도하면서 세계적 충격을 몰고 온 것이다.

▼일파만파 한은 보고서▼

한은 보고서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게 된 것은 물론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4위의 외환보유국이며 2000억 달러가 넘는 외환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한국의 위상 때문에 한은의 방침에 대해서도 국제금융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은 보고서 파문’의 진정한 원인은 불안한 국제통화질서에 있었다. 현재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사상 최대규모이며, 대규모 적자는 아시아 흑자국들로부터의 자본 유입으로 보전되고 있다. 즉 아시아 흑자국들은 수출로 벌어들인 돈을 미국에 재투자함으로써 달러화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시스템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면서 달러화 폭락의 위험이 높아만 가는데, 막대한 달러화 자산을 보유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앉아서 당할 리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 동아시아 중앙은행들의 반응에 국제적 관심이 고조된 바로 그 시점에 한은의 보고서 내용이 보도되면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온 것이다.

한은은 환손실을 줄이기 위한 외환보유 다변화 정책의 발표만으로도 원화 환율이 폭락할 수 있음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만약 이를 알고 있었다면 지금처럼 행동하지 않고 우선 다변화 전략의 추진에 보다 신중을 기했을 것이다. 환율 폭락에 직면해서도 한은의 투자 다변화 정책이 투자대상 통화의 다변화가 아니라 비정부채 투자의 확대라고 하면서 다변화의 의미를 축소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사태로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외환 및 환율정책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독자적인 정책 수행이 자칫 감당하기 어려운 원화 환율 폭락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동아시아 중앙은행들과의 협조체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 중앙은행들은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더라도 달러화 자산을 서둘러 매각하지 않고 서로 협력해 환손실을 공평하게 나눠야 한다.

▼東아시아와 공동보조를▼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재 동아시아 중앙은행들 간에는 뚜렷한 협조체제가 구축돼 있지 않다. 중국은 위안화를 달러화에 페그(peg)시키는 환율제(고정환율제)를 고수하고 있으나 다른 나라들은 자국 통화의 강세를 용인하고 있다. 1985년 9월의 플라자 합의 때와 같은 주요국 간 협조체제를 구축하지 않고서는 향후 글로벌 경제조정이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박원암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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