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세웅]나누는 게 사랑이다

  • 입력 2004년 12월 24일 17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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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전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아 탄생의 의미를 로마인들의 지배와 핍박에서 그들을 해방시켜 줄 해결사, 즉 ‘독립투사’ 출현에서 찾고자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로마인들과 싸워 그들을 물리치리라 믿었던 예수는 싸울 생각은 고사하고 싸우려는 사람들조차 말렸다. 사람들을 모아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적들을 몰아내자고 하지 않고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을 내밀라”는 식의 말을 하고 다녔다. 투쟁과 해방의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이스라엘인들의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을 것이다.

▼익명의 기부 늘어 훈훈한 연말▼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예수는 이스라엘의 독립이 아니라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셨다. 로마인들의 지배와 핍박으로부터의 물리적인 해방이 아니라 마음의 구속과 속박을 풀어 주려고 말구유에서 태어났다는 얘기다. 그는 분노와 싸움을 말리고 용서와 화해를 가르쳐 사랑과 평화를 이루기 위해 결국 십자가를 택했다. 스스로 지극히 높은 곳에서 낮은 데로 내려가 헐벗고 상처받은 이들을 어루만졌다. 스스로 고난을 짊어짐으로써 세상 사람들의 고통을 감싸안았고 세상에서의 삶을 다하는 그 순간까지 용서하고 또 용서했다.

해마다 돌아오는 성탄이고 그때마다 마음에 되새기는 예수 탄생의 의미지만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느낌이 크고 마음이 숙연해진다. 경기침체가 장기간 계속되면서 모두들 유례없이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어려운 이웃들에 대한 온정의 손길은 이전보다 더 늘었다는 보도가 나온다. 올해는 특히 익명의 작은 기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예수가 그러했듯이 스스로 힘겨운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더 어렵고 딱한 사람들의 삶을 보살피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대립과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아 서로 타협하고 화해할 실낱같은 희망조차도 보이지 않고 있다. 아직도 더 높은 곳이나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사정이 눈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2000년이나 까마득히 오래전에 저 멀리 이스라엘의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한 생명이 태어난 그 사건을 지금까지도 해마다 떠들썩하게 기념하는 것은 그분이 남기고 간 그 ‘무엇’이 지금도 여전히 변치 않는 가치를 갖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분이 ‘그렇게 하라’고 한 가르침을 우리가 아직도 다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해마다 되새기건만 여전히 미진하기에 사람들은 구세주 메시아의 탄생을 기억하고 축하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정작 예수 그리스도는 저 낮은 곳에서 늘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엉뚱한 곳, 높은 곳에서 그분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면 매년 이맘때만 잠시 그분을 찾을 뿐, 다른 날에는 까마득히 그분의 존재와 가르침을 잊어버리고 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호들갑을 떨며 연말에 다시 그분을 찾게 되는 것이다.

▼작은 사랑 보태면 큰 사랑▼

마음이 가난하면 행복하다 일렀지만 그게 잘 되질 않는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일렀건만 마음이 가난하지 않으니 이웃의 딱한 사정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웃 사랑을 너무 크게 생각해서 선뜻 마음먹기가 힘든 것이다. 보잘것없는 작은 사랑도 빵 부스러기처럼 조금씩 나누다 보면 그것이 모여 큰 사랑이 된다는 것을 모르거나, 사랑은 거창한 것이어야 한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작은 사랑을 빵 부스러기처럼 조금씩 나누려는 생각, 그것이 바로 소박한 마음이고 가난한 마음인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렇듯 가난한 마음을 가지게 될 때 구세주 예수가 우리에게로 오실 것이다.

이세웅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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