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성과 영혼’… 性 = 道

  • 입력 2004년 11월 19일 16시 38분


◇성과 영혼/클리포드 비숍 지음 김선중 강영민 옮김/193쪽 2만5000원 창해

성에 관한 가장 그럴듯한 통념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인간의 동물적 본성과 관련돼 있다는 것일 게다. 하지만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의 ‘생식’과 인간의 ‘성(性)’은 전혀 다른 차원에 놓여 있다.

이 책 ‘성과 영혼’은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종교적 맥락에 놓여 있는 성 문화에 주목한다. 고대의 원시적 주술로부터 현대의 첨단 가상현실에 이르기까지, 또 북극의 에스키모로부터 아프리카의 소수 종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들이 성과 영혼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 왔으며 또 실제로 어떻게 영위해 왔는지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성을 신체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로만 본다면 언뜻 성을 영혼과 결부시키는 것이 뜬금없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성 문화가 인간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영적 체험과 긴밀한 연관 속에 전개돼 온 양상들을 동서고금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확인시켜 주고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성은 인간의 자아와 우주 사이의 단절을 치유하기 위한 상징적 수단으로 간주돼 왔다”고 지적한다. 그는 “성이 도취의 한 형태로 기능함으로써 개인적 초월에 도달할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해 왔다”고 말한다.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육체적 쾌락에 탐닉할 때조차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장 영적이고 초월적이며 정신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인도의 탄트라나 중국의 도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도와 중국을 왕래하던 불교 승려들에 의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이들 종교에선 성이 종교적 구도(求道)의 과정과 직접적으로 맞물려 있다. 서양의 성적 신비주의 전통에서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초월을 얻는 수단으로 성을 활용하는 것인데, 이때 성적 체험이란 다름 아닌 영적 체험이다. 이렇게까지 직접적이지는 않더라도 세계 도처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성 풍속의 근원을 추적해 가면 ‘종교적 제의’로서의 맥락이 발견됨을 이 책은 확인시켜 준다.

한편 그와 정반대 양상으로 여겨지는 서구 기독교의 금욕주의적 전통에 대해서도 저자는 “서양 세계가 죄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가운데 상당수는 종교의 경전과는 상관이 없다”고 지적한다. 그는 “성에 관한 죄의 목록은 4∼5세기 로마제국 말기에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이후 점점 강해지는 교회 조직에 의해 널리 퍼지고 강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때 저자가 주목하는 대목은 이러한 성 관념 역시 ‘육체에 대한 건전하지 못한 경멸’ 때문이라기보다는 ‘영혼에 대한 강한 집념, 신에 더 가까워지려는 각오’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이 밖에도 이 책에는 흥미로운 사례들이 무궁무진하다. 키프로스의 파포스에는 아프로디테의 신전이 있었다. 이 도시의 여자들은 결혼하기 전에 신전에서 낯선 사람에게 매춘을 한 번 해야 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후에도 처녀로 간주됐으며 이 매춘으로 아이가 태어나면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 하여 신전에서 키웠다고 한다.

또 공식적으로 모자간의 동침을 허용했던 남아메리카 쿠베오족이나 아프리카 투치족의 사례를 통해 가장 견고한 것처럼 보이는 모자간의 근친상간을 둘러싼 금기도 문화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변정수 미디어평론가 iamddongga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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