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07년 오클라호마 美합중국 편입

  • 입력 2004년 11월 15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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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하는 총성이 울린다. 출발선에 대기하고 있던 수만명의 개척자들이 좋은 땅을 차지하려고 일제히 달려 나간다. 일단 ‘내 땅’에 말뚝부터 박는다. 그야말로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인 시대. 19세기 후반 미국은 서부개척의 열기로 달아올랐다.

개척자들이 차지한 땅은 물론 인디언들에게서 빼앗은 것. 대평원 남쪽에 위치한 오클라호마는 백인 개척자와 인디언 토착민이 가장 치열하게 맞붙었던 지역 중의 한 곳이다. 1907년 11월 16일 오클라호마가 미합중국의 46번째 주(州)가 되면서 미 중부에서 인디언의 저항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백인들이 등장하기 전 오클라호마는 ‘개화 5부족’이라고 불리는 체로키, 촉토우, 크리크, 치카소, 세미놀 족의 영토였다. 고유 문자와 법체계를 갖추고 있을 정도로 똑똑한 부족이었다. 원래 미 남동부에 살았던 이들은 1820년 무렵 백인들의 총부리에 밀려 오클라호마까지 쫓겨 왔다. 미 남동부에서 오클라호마까지 이들이 거쳐 온 1600km의 여정은 ‘눈물의 길(The Trail of Tears)’이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그러나 오클라호마에서도 인디언의 눈물은 마를 사이가 없었다. 석유가 발견되고 철도가 놓여지면서 오클라호마는 개척자들에게 ‘기회의 땅’으로 떠올랐다. 연방정부는 인디언들에게서 땅을 헐값에 사들이거나 총칼로 빼앗아 백인들에게 나눠주었다. 오클라호마는 주의 별명이 ‘더 빨리 간 사람들의 주(The Sooner State)’일 정도로 당시 일확천금을 꿈꾸는 개척자들로 들끓었다. 인디언 5부족은 백인들의 영토 확장에 맞서 ‘세쿠오야’라는 단일국가를 세우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땅이라는 기댈 언덕이 사라진 인디언들은 오클라호마가 미 연방 체제에 편입되는 것을 그저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도 오클라호마에는 인디언 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오클라호마라는 이름은 촉토우 인디언말로 ‘붉은 사람’, 즉 인디언을 뜻한다. 현재 오클라호마에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25만명의 인디언이 살고 있다. 그러나 과거 백인들에 용맹하게 맞섰던 인디언들은 지금 백인들이 흘리고 가는 카지노 수익금과 정부 보조금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 ‘눈물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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