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이재경]언론자유 확대가 민주개혁

  • 입력 2004년 11월 11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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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이후 벌써 국민이 대통령을 네 차례나 직접 뽑았다. 어렵게 시작된 민주화의 역사도 20년에 다가간다. 정부와 권력기관의 문민화는 거의 완성된 듯하고, 부족하지만 지방자치의 틀도 갖춰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언론자유는 줄곧 뒷걸음질이다. 새로운 문민 대통령이 등장할 때마다 정부의 언론정책은 규제의 강화를 넘어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 때는 유력 언론사를 대상으로 은밀히 세무조사를 실시한 뒤 결과를 공개하지 않은 채 정치적 압력수단으로 사용했다는 설이 무성했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는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통해 주요 언론사주들을 구속하고 신문과 방송사들로부터 거액의 과징금을 추징했다. 탈법행위를 징벌하는 것은 정부의 임무이니 탓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정책의 동기가 언론이 정부를 감시하는 기능을 겨냥했고 실제로 강력한 견제 수단이 됐으니 그 점이 문제다.

▼거꾸로 가는 언론 정책▼

참여정부는 김영삼 김대중 정부보다 더욱 강력한 자세로 언론활동을 제약해 왔다. 초기에는 브리핑제도의 도입으로 기자의 정부부처 취재를 제한했다. 1일 외교통상부가 출입기자들의 청사 출입을 제한하겠다고 선언한 사실은 이러한 정책이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입증한다. 취재 기회를 축소하는 한편으로 부정확한 보도에 대한 법률적 대응은 과거 정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화했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각 부처가 언론사를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한 사례가 참여정부 들어와 급증한 현상은 세계 언론사에서 유례를 찾기가 어렵다. 열린우리당이 국회에 제출한 신문 관련 법안은 어느 측면에서 봐도 언론 자유를 진작하려는 의지가 담긴 안은 아니다. 특히 편집위원회의 설치, 독자위원회의 의무화는 발행인과 편집자, 그리고 취재기자들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음을 느끼게 한다.

좋은 언론의 첫째 조건은 자유다. 그리고 자유 언론은 정부나 법률이 개입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유론’을 쓴 존 스튜어트 밀은 “부패하거나 독재적인 정부에 대한 중요한 견제장치의 하나는 언론의 자유”라고 말했다. “모든 정부는 그 본성 속에 시민의 공개적인 비난을 거부하고 비판을 억제하며, 이견을 탄압하고, 저항을 징벌하고자 하는 충동을 갖고 있다.” USA 투데이 초대 편집장인 존 사이겐탈러의 말이다. 20년이 아니라 수백년에 걸쳐 민주정치를 체험해 온 나라 언론인의 인식은 정부와 언론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

엘머 콘웰은 1910년 무렵부터 1960년대까지 미국 대통령과 언론의 관계를 연구한 정치학자다. 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언론관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람은 전무후무하게 4선을 거치며 뉴딜정책으로 대공황을 극복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재임 중 거의 예외 없이 일주일에 두 번씩 백악관 출입기자단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그 자리를 이용해 자신이 추진하려는 정책을 설명하고 설득했다. 또 기자들의 기사와 사진을 통해 끊임없이 국민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지지기반을 다지는 효과도 거두었다는 게 콘웰의 분석이다.

▼신문의 감시기능 인정해야▼

그런가 하면 루스벨트의 전임자로 대공황을 초래하다시피 한 대통령인 허버트 후버는 기자와의 만남을 피했다. 출입기자단에 대해 적대적인 자세를 취하기 일쑤였다. 이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후버는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 가운데 한 명으로 기억된다. 언론을 적대시한 또 한 명의 대통령은 리처드 닉슨이다. 닉슨 시절 부통령이었던 스피로 애그뉴는 공개 연설을 통해 언론을 공격하곤 했다. 베트남전에 대한 비판적 보도가 크게 늘자 린든 존슨 대통령은 비서관들과 각료들에게 메모를 보내 기자들과 접촉할 때는 반드시 자신의 서면 승인을 얻을 것을 지시했다. 결과 보고서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이 또한 언론에 대한 적대감의 표현이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들은 누구도 법률로 언론의 행위를 규제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기자를 사무실이 아니라 법정이나 중재위원회에서 만나서는 국민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언론의 감시기능을 인정해야 한다. 민주개혁은 규제의 신설이 아니라 자유의 확대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이재경 객원논설위원·이화여대 교수·언론학 jklee@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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