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오세정]‘내 탓이오’ 실종된 교육현장

  • 입력 2004년 11월 4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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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교육부가 ‘2008학년도 이후의 대학입시제도 개선안’을 확정 발표한 후에도 이에 대한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공교육을 살린다는 명분을 내세운 새 입시제도는 수학능력시험 성적을 점수 대신 등급으로만 표기하고, 내신을 강화하기 위해 평어 대신 석차등급제를 도입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에 대해 대학들은 성적 부풀리기가 심한 고교 내신을 믿을 수 없는데 수능 변별력마저 떨어뜨리면 무엇을 근거로 학생을 뽑느냐고 불평하고, 반면 전국교직원노조 등 일부 단체는 “고교등급제 등 자의적으로 선발권을 행사하는 대학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며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퇴진 운동을 벌이겠다고 한다. 학부모들 또한 내신 관리와 대학의 심층 면접이나 논술을 대비하기 위한 사교육비가 더 들 것을 우려하고 있다.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가나▼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에서 교육문제가 뜨거운 감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한쪽에서는 개선안이 덜 개혁적이라고 비판하고, 다른 쪽에서는 너무 나갔다고 반발한다. 여기에 이념적인 성향까지 섞이면 서로 손가락질하면서 ‘네 탓’이라고 비난하기 일쑤다. 그러나 이러한 이전투구(泥田鬪狗) 속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바로 우리 자녀들이고 문제 해결은 점점 멀어져 가기만 한다.

현안인 대학입시 문제를 보자. 일부에서는 대학 서열화가 학벌주의의 근본 원인이라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학생들을 점수로 줄 세우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대학측은 학생들의 정당한 실력차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불공정한 일이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이른바 일부 진보세력이 수능의 무리한 등급제나 자격고사화를 추진하게 된 데에는 대학측이 빌미를 제공한 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동안 일류 대학들은 서열화에 안주해 왔으며, 재력(財力)에 의한 학력 세습을 막으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후발(後發) 대학들은 교육의 질(質)로 승부하기보다 사법고시 합격생을 늘리는 등 세속적인 가치 추구를 통해 대학의 성가를 높이려 했고, 이러한 현상이 복합돼 점수에 의한 학생 서열화를 부추기고 결국 고교교육의 황폐화에 이르게 된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현 상황에서 수능 성적을 무시하고 내신으로만 학생을 뽑으라는 주장은 무리다. 고교 내신의 성적 부풀리기가 심각해 믿기 어려운 데다 고교별 학력차가 분명한 상황에서 기계적인 평등을 강요하면 학력 우수자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대학생활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은 역시 학생의 학력이므로, 대학이 지원자의 학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내신이 학생의 실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에 대학에서 할 수 없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본고사나 심층면접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성적 부풀리기로 내신의 신뢰성을 스스로 떨어뜨린 고교 교사들이 자신의 허물은 돌아보지 않은 채 대학을 향해 내신만으로 학생을 뽑으라고 주장하는 것은 낯 뜨거운 일이다.

▼학부모도 자유롭지 못하다▼

학부모들 또한 현재 한국의 교육상황을 만든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느 논객이 지적했듯이 우리 학부모들은 한국 교육 현실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기도 하다. 사교육비 부담에 허리가 휘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자식을 남보다 앞서게 하려고 사교육을 조장하는 가해자의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성을 검증하기 어려운 학부모단체들이 대학 입시에 대해 일방적인 주장을 펴며 이념적인 잣대로 편 가르기에 끼어드는 것은 별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인성과 교양 교육을 위해 현장에서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논의하는 일이 건설적일 것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 교육의 문제는 복합적인 원인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여러 당사자들이 자기 눈의 대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의 티끌만 탓하는 태도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서로 남을 향해 “네 탓이야”라고 외치기 전에 “내 탓인가” 하고 자성하는 물음을 해보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오세정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물리학 sjoh@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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