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재명]‘7m 도로’ 시민전쟁

  • 입력 2004년 10월 5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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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주민과 도로개설 시행사간의 대립으로 출발한 ‘7m도로 분쟁’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용인시 죽전간의 도로 개통 여부를 놓고 대치 중인 분당구 구미동과 용인시 죽전동 주민들 사이엔 더 이상 대화나 협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석 달째 천막시위를 벌이고 있는 구미동 주민들에게 맞서 죽전동 주민들 역시 1일부터 ‘맞불 농성’에 돌입했다. 3일 양쪽 주민 수백명은 도로에서 고함을 치고 욕설을 퍼부었다.

죽전동 주민과 용인시의회는 10일까지 도로가 뚫리지 않으면 지하철 분당선 철도기지창을 점거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분단의 현장’이 따로 없다는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상황이다.

죽전동 주민들은 서울로 가는 지름길을 막지 말라고 주장한다. 반면 구미동 주민들은 죽전은 물론 동백 구성 하갈지구 등 용인시 남쪽에 들어설 택지개발지구 입주 예정자 40만명이 이용할 도로가 아파트단지 내 도로와 연결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서로 처지를 바꿔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주장들이다. 문제는 수년 전부터 예견됐던 이 같은 갈등을 풀어 가기 위한 노력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성남시는 2000년부터 용인시에 대체도로 마련을 요구했다. 하지만 용인시는 건설교통부가 승인한 도로라고 버텼다.

결국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러 구미동 주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오고 나서야 경기도는 건교부에 중재를 요청했다. 성남시와 용인시도 중재안에 따르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막상 건교부가 중재안을 내놓자 성남시는 이를 거부했고 경기도도 흐지부지 물러섰다.

문제는 주민이나 자치단체간에 양보와 타협은커녕 원칙과 약속을 존중하는 자세를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책임지고 주민들을 설득하려는 자치단체의 민주적 리더십도 부족했다.

이번 분쟁이 지자체간 갈등을 슬기롭게 극복한 선례로 남을 수 있을지, 아니면 이웃 지역간 최악의 갈등 사례라는 오명을 쓴 채 법원의 손에 넘어갈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이재명 사회부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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