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

  • 입력 2004년 9월 10일 17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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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사본에 수록된 콘스탄티노플의 모습. 1453년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으로 로마제국은 종말을 고했다. -사진제공 갈라파고스
라틴어 수사본에 수록된 콘스탄티노플의 모습. 1453년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으로 로마제국은 종말을 고했다. -사진제공 갈라파고스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스티븐 런치만 지음 이순호 옮김/384쪽 1만5800원 갈라파고스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죽은 뒤 동서로 갈라진 중세 로마제국 중 동방제국을 동로마제국(330∼1453년)이라고 한다. 이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1세는 330년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후 보스포루스 해협에 있는 그리스 식민지 비잔티온에 제2의 로마 수도를 짓고 자신의 이름을 따 ‘콘스탄티노플’(콘스탄티누스의 거리라는 뜻)이라 명명한다.

마르마라해와 흑해를 가르는 보스포루스 서쪽 입구에 건설된 이 도시는 동양과 지중해 사이 해상로와 유럽과 아시아 사이 육로의 교차점에 있었다. 이런 지리적 이점 때문에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과 상품들로 넘쳐났다. 한창때인 12세기에는 인구 100만명이 살 정도였다. 그러나 1453년 5월 29일 오스만튀르크제국 술탄 메메트 2세의 점령으로 멸망했다.

동로마제국은 서양사에서 푸대접을 받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이 믿고 싶은 로마는 476년에 끝난 고대 로마뿐이었다.

이 책 은 1453년에 벌어진 튀르크족과의 공방전과 그 전후 상황에 초점을 맞춰 지금까지 서방에서 홀대받아 온 동로마제국을 새로운 관심과 애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로마제국의 원년을 아우구스투스가 등극한 기원전 27년으로 잡는다면,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동서 로마를 막론하고 로마제국 1480년의 사직이 무너진 역사적 사건이다.

영국이 자랑하는 동로마 역사연구의 일인자 스티븐 런치만(1903∼2000년)은 한 편의 전쟁영화 시나리오를 쓰듯이 서스펜스와 스릴, 페이소스에 방대한 자료를 버무려 품격과 재미를 갖춘 이 역사서를 펴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콘스탄티노플 함락의 실제가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서방의 원조를 기다리며 마지막 순간까지 혼신의 힘을 쏟아 부은 황제와 영웅적 분투를 아끼지 않은 콘스탄티노플 시민들의 투쟁, 정치적으로 쇠락하는 시기에도 찬란하게 꽃 피어난 문화, ‘정복자’ 메메트 2세의 콘스탄티노플을 향한 집념, 함락 전 소피아 대성당에서 미사를 올리는 시민들의 절박한 모습, 파죽지세로 치고 들어오는 튀르크족의 기세, 동서 교회의 오랜 갈등과 대립, 주변국들의 어정쩡한 태도, 동방정교회의 신비주의적 분위기, 처한 상황에 따라 체념적 운명론과 불굴의 전사로 갈린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은 가혹한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현재진행형의 우리네 삶으로 읽힌다.

이순호씨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고대 서양 최대의 제국을 건설했던 로마의 최후는 흥망성쇠 생로병사의 순환 고리를 갖는 인간사의 종말과 비유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도 같았던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에서 옛 로마의 광휘란 찾아 볼 수 없다. 흥망성쇠를 거스를 수 없던, 외롭고 처절하게 투쟁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선 시공을 뛰어넘은 인간적 비애와 연민을 느낀다’고 밝혔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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