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훈/‘자수’안하면 反개혁?

  • 입력 2004년 7월 7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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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수십 차례 전화를 받다보니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다.”

한나라당 박창달(朴昌達)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이후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의 보좌관들이 쏟아놓는 하소연이다. 실제 체포동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의원을 색출하기 위한 당원들의 압박 때문에 당내 분위기는 험악할 정도다.

그래선지 당 홈페이지를 통해 진행하고 있는 ‘양심 고백’ 운동에 7일 현재 전체 의원의 3분의 1에 가까운 46명이 ‘찬성표를 던졌다’거나 ‘투표하지 않았다’는 해명 글을 올렸다. 여기에는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과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도 포함됐다.

인사(人事)에 관한 사항을 무기명 비밀투표로 처리하도록 한 것은 국회법에 규정된 것이다. 게다가 열린우리당은 이번 사안에 대해 의원 개개인의 소신과 판단에 따른 자유투표를 실시하기로 입장을 정리했었다.

물론 새 정치를 외치며 출범한 17대 국회 첫머리에 동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투표 결과가 실망스럽다고 해서 반대표를 던진 의원들을 색출하기 위해 답변서 제출을 강요하고, 이를 거부한 의원들을 ‘반개혁적’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다. 더 심하게 말하면 현대판 ‘마녀 사냥’이나 마찬가지란 생각이다.

무기명 투표 결과를 공개한 의원들과는 달리 몇몇 의원들은 당원들의 비난을 감수하고 공개적으로 답변서 제출을 거부한다는 소신을 피력하고 있다.

이광철(李光喆) 의원은 최근 당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이런 방식은 열린우리당 내부의 반성과 새로운 변화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한다”며 투표 내용 공개를 거부했다.

정봉주(鄭鳳株) 의원도 “반성하고 개혁의 작업에 힘차게 나설 것을 촉구해야지 출당 가능성까지 언급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며 답변서 제출을 거부했다.

‘나는 찬성했다’고 백기를 든 의원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잘못은 했지만 이건 아니다’라고 당당하게 밝히고 ‘매를 맞는’ 의원들에게 국민은 더 높은 점수를 줄 것 같다.

이훈 정치부기자 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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