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유우익/‘파이’는 클수록 좋다

  • 입력 2004년 6월 14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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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를 가둬 놓고 개체 수를 늘려 가면서 그 행태 변화를 관찰하면 흥미로운 사실을 볼 수 있다. 개체 수가 늘수록 점점 부산하게 돌아다니고 열심히 먹는다. 그러나 그 수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생쥐들은 먹이에도 관심을 두지 않고 마냥 싸우기만 한다. 밀도가 높아지면서 생쥐들이 ‘닫힌 공간’을 인지하고 그에 상응한 행태를 내보이는 것이다.

▼서울大폐지-大企業규제 결과는…▼

먹이가 한정된 닫힌 공간에서는 누군가 그걸 먹으면 내 몫이 준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은 닫힌 공간의 논리를 잘 말해 준다. 폐쇄된 촌락사회에서 사촌이 잘 되는 것은 곧 내게 부담이 된다. 그가 부자가 되면 동네와 문중에서 내 위상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생쥐가 아니다. 꼭 밀도가 높아져야 닫힌 것을 지각하는 것도 아니고, 닫혀 있다고 해서 반드시 다른 이를 미워하지도 않는다. 적어도 그렇게 하지 않도록 이치와 도리를 가르치고 익힌다. 그래서 사촌이 땅을 사면 설령 배가 아프더라도 흔쾌히 축하해 주라고 하고, 경쟁에서 규칙을 정해 페어플레이를 하도록 강제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공동체와 구성원 개개인의 안녕과 복지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열리고 있다. 세계화와 정보화는 닫혀 있던 공간을 빠른 속도로 열어 가고 있다. 농경사회의 닫힌 공간 논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공동체 내에서 제로섬 게임을 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열린 세상으로 나아가 파이를 키우고 더 맛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가능해졌다. ‘열린 공간’의 논리가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열린 공간은 먹이의 양이 정해져 있지 않다. 늘 수도, 줄 수도 있다. 따라서 그걸 ‘어떻게 나누느냐’보다 ‘어떻게 키우느냐’가 더 큰 관심사가 된다. 이제는 사촌이 잘 되면 신이 나는 것이다. 내 몫이 늘어날 확률이 커지기 때문이다. 파이를 키우고 맛있게 만드는 이를 칭찬하고 힘을 실어 주는 일이 더 긴요하게 됐다. 잘하는 이로 하여금 더 잘하도록 돕는 것이 잘못하는 이를 포함한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서도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요즈음 세간에서 논의되는 몇 가지 정책을 보자. 서울대를 폐지하겠다거나 대기업의 경제활동을 규제하겠다는 생각이 열린 공간의 논리에 맞을까. 대학과 기업은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개발하고 밖에서 돈을 벌어들여 파이를 키우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중에서 그나마 잘하는 이에게 족쇄를 채울 궁리를 하는 것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 옳을까. 잘하는 이들을 잡아채서 다같이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수도를 이전해 서울 집중을 완화하겠다는 생각도 닫혀 있기는 마찬가지다. 서울과 지방간의 격차는 보면서 왜 뉴욕 런던 도쿄와 서울의 경쟁력 격차는 외면하는가. 왜 동북아중심 구상, 통일은 말만 하고 실제 정책에서는 외면하는가.

▼‘늦깎이 좌파’식 발상은 곤란▼

‘공직자 주식 백지신탁제’라는 것도 그렇다. 정경유착과 부패 방지의 측면에서 일리가 없지 않으나, 그건 관련 정책을 직접 결정하고 집행하는 고위 관료에 국한되는 논리다. 그걸 일반화해 적용할 때 초래될 부작용은 어찌 할 것인가. 기업 경영의 노하우가 배제된 정치가 열린 세계에서 과연 먹힐까. 거꾸로, 열린 세계에서의 국정이 세금도 제대로 안 내 본 사람들만으로 관리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건 구시대적이고 닫힌 공간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기득권 해체’라는 명분을 앞세워 시대를 거꾸로 가는 소위 ‘늦깎이 좌파’식 발상을 해서는 안 된다. 개혁은 시대의 흐름과 공간의 속성에 맞추어 바꾸는 것이라야 한다.

마침 여당의 이름이 ‘열린우리당’이다. 마음을 열고 열린 공간의 논리를 받아들이기 바란다. 닫힌 공간의 시대는 지나갔다.

유우익 서울대 교수·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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