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시하눅빌 스토리’…한국 ‘고난의 길’을 보다

  • 입력 2004년 6월 4일 17시 30분


◇시하눅빌 스토리/유재현 지음/279쪽 8500원 창비

‘시하눅빌 스토리’는 1992년 계간 ‘창작과 비평’을 통해 등단한 작가 유재현씨(42)가 12년 만에 내놓은 첫 소설집이다. 그 내용이 한국 문학의 영토를 확장했다는 점에서 우선 눈길을 끈다.

연작소설인 ‘시하눅빌 스토리’는 ‘솜산과 뚜이안’ ‘대마는 자란다’ ‘그래도 대마는 자란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서 온 사나이’ ‘시하눅빌 러브 어페어’ ‘보헤미안 랩소디’ 등 6편으로 이루어졌다. 이 소설은 그동안 한국 문학에서는 생소한 지역인 캄보디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데다 ‘조선민주주의…’에서 ‘조선인’이 등장한 것 외에 한국인은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제목인 ‘시하눅빌’이란 캄보디아 지명이나 ‘뚜이안’ ‘삐’ 등 등장인물의 이름은 생소하지만 읽다 보면 아주 낯설지만은 않다. 근대 캄보디아 사회 속에서 우리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전쟁으로 거칠어진 삶, 전쟁 후 밀려든 서양인에게 몸을 팔아 살아가는 여자들, 만연해 가는 물신주의 등은 근대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아시아적 현상’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학평론가 고영직씨는 작가가 ‘은유적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 소설의 외부를 들여다봄으로써 내부를 성찰하고자 하는 작가의 열망으로 가득한 작품이며, 우리 안에 ‘잠재된 오리엔탈리즘’을 성찰할 수 있는 독특한 소설적 사유의 세계로 안내한다.”

작가 역시 “연작의 마지막 편을 끝낸 어느 새벽, 내 앞에 확연히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시아’였다. 그리고 그 아시아 너머에 한반도가 보였다”고 말한다.

6편 중 ‘솜산과 뚜이안’을 제외한 나머지는 미발표작이다. 각 편은 자체로 완결구조를 갖고 있는 동시에 서로 맞물린다. 특히 ‘솜산과 뚜이안’ ‘대마는 자란다’ ‘그래도 대마는 자란다’ 세 편은 긴밀하게 얽혀 있다. 택시 운전사인 ‘솜산’과 결혼을 약속한 베트남 창녀 ‘뚜이안’이 돈 문제로 결국 서로를 죽이게 되는 내용과 문제가 된 미화 1400달러를 놓고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이 반전을 거듭해 펼쳐진다. 뒤의 세 편은 각 작품끼리의 연계 고리가 좀 더 느슨하다. 이 중 과부가 딸과 함께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 ‘시하눅빌 러브 어페어’는 가장 따뜻한 작품이다.

작가는 ‘시하눅빌’에서 6개월가량 거주했으며 지난해에는 인도차이나 지역의 역사문화기행문인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를 펴내기도 했다.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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