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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5월 28일 17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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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조지 W 부시는 어떻게 앨 고어에게서 백악관을 ‘훔칠 수’ 있었던 걸까. 왜 부시는 9·11테러 직전 오사마 빈 라덴 가문에 대한 수사를 중지하라고 미 연방수사국(FBI)에 지시했을까. 환경규약 제정 반대에 앞장서 온 극우단체의 대표가 어떻게, 그리고 왜 영향력 있는 환경단체 산하기구의 의장을 동시에 맡게 됐을까.
심층보도 전문 프리랜서인 저자가 특종 기사들을 보완 손질해 내놓은 책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임을 자부하는 미국에서 정치가와 재력가, 그리고 기업들이 돈을 긁어모으기 위해 어떻게 막강한 권력을 독점해 제도를 만들고, 이를 이용해 세계 각국의 정치와 경제를 주무르는지를 밝혔다.
테러단체 지원 의혹을 받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억만장자와 부시 가문의 연계사슬을 비롯해 월마트 엑손모빌 등 미국 거대 기업들의 비리,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금융기구의 실체, 그리고 세계무역기구(WTO)의 조약이 어떻게 아프리카에서 싼 에이즈 치료제가 나오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가 등에 대해 저자가 밝힌 흥미로운 사실 혹은 주장은 이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
앞의 미국 대선 의혹으로 돌아가 보자. 부시 대통령의 동생 제프 부시가 주지사로 있는 플로리다주는 불과 537표 차로 부시에게 승리를 안겨 부시의 백악관 입성을 확정했다. 당시 플로리다주 선거인 명부에서 제명돼 투표권을 박탈당한 유권자의 상당수는 민주당 지지층인 흑인이었다. 특히 무효 처리된 17만여표 중 백인 무효표는 ‘500분의 1’ 비율이었던 반면 흑인은 ‘8분의 1’로 매우 높았다. 저자는 플로리다주 정부와 거액의 계약을 하고 제명 대상자 명단을 제공한 업체가 공화당과 아주 밀접한 관계임을 밝혀냈다. 또 백인 거주지역과 흑인 밀집지역의 투표기계를 무효처리될 표에 대해 다르게 작동하도록 조작함으로써 흑인 거주지역의 무효표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저자가 책머리에서 “이 책을 뉴욕타임스에서 읽어보지 못한 것들, 혹은 CBS에서 보지 못한 것들이라고 불러도 좋다”고 썼듯이, 그의 기사는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미국의 유력 미디어에서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 대신 영국의 공영방송 BBC와 일간지 ‘옵서버’, ‘가디언’ 등이 그의 기사를 실어주었다.
저자는 미국의 기자들이 정부와 홍보 담당자가 던져주는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얌전한 양떼들’로 길들여져 있으며 그 양들은 침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래리 서머스 전 재무부장관을 ‘IMF를 접수한 외계인’이라고 표현한 예에서 볼 수 있듯 이 책은 독설로 가득하다. 부시와 미국 사회에 칼날을 들이댔던 마이클 무어의 ‘멍청한 백인들(Stupid White Men)’류의 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 역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현란한 문장이 설익은 채 번역돼 가끔은 읽기 어려운 게 흠이다. 원제 ‘The Best Democracy Money Can Buy’(2003년).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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