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나는 왜 사이보그가 되었는가’

  • 입력 2004년 5월 28일 17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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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사이보그가 되었는가/케빈 워릭 지음 정은영 옮김/511쪽1만6900원 김영사

“지능적인 기계나 로봇이 인간으로부터 지구를 물려받을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그다지 정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인간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의 예측도 분명히 빗나갔다. 지구는 사이보그가 지배하고 있다.”

1998년과 2002년 자신의 신경에 기계를 연결해서 스스로 사이보그가 되는 시험을 감행했던 저자 케빈 워릭 교수(영국 레딩대 인공두뇌학과)가 예견한 2050년 지구의 모습이다.

●육체보다는 정신적 측면의 발전 가능성 높아

사이보그(cyborg)란 ‘인공적 유기체(cybernetic organism)’의 합성어로 생물과 무생물이 결합된 ‘자기조절 유기체’를 가리킨다. 그런데 워릭 교수가 생각하는 사이보그란 흔히 생각하듯이 ‘600만달러의 사나이’ 같은 엄청난 완력과 점프력을 지닌 ‘육체적’ 사이보그가 아니다. 그에 따르면 사이보그는 ‘정신적’ 측면에서 발전할 가능성이 더 크다.

무선장치를 이용해 두뇌가 직접 중앙컴퓨터 네트워크에 연결된 사이보그들은 생각만으로 네트워크에 접속해 중앙컴퓨터의 지적 능력과 기억을 불러낼 수 있다. 반대로 중앙 네트워크는 정보를 얻거나 임무를 주기 위해 개별 사이보그와 의사소통을 한다. 이렇게 네트워크는 하나의 통합된 체계로 작동하게 된다. 이런 엄청난 지적 능력을 가진 사이보그에게 육체적 능력의 중요성은 오히려 감소한다.

저자가 1998년에 시도한 사이보그 시험은 자기 팔의 신경에 컴퓨터 칩을 연결해 그 행동에 관련된 정보를 컴퓨터가 읽어내도록 한 것이었다. 2002년에는 칩을 자신은 물론 아내의 팔뚝 신경에까지 연결해 인간과 컴퓨터, 인간과 인간 사이에 언어를 통하지 않고도 의사소통과 정보교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 책은 그가 직접 사이보그가 되는 시험을 하게 된 사연과 시험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자전적 에세이다. 광장공포증에 걸린 아버지가 뇌신경 수술을 통해 치유되는 것을 보며 뇌를 기계로 인식하게 된 어린 시절, 직장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대학에 진학해 인공지능과 로봇에 관심을 갖게 된 경로, 그리고 두 번의 사이보그 수술 과정까지.

●인간, 미래의 침팬지?

그도 자신의 신경에 기계를 연결하는 수술이 가져올지 모를 부작용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꼭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닌데 아빠는 왜 그렇게 시험을 하려고 해”라고 묻는 딸에게 “나는 과학자야. 그래서 이것이 바로 내 인생이고, 내 모든 것이다”라고 말한다.

저자가 보기에 기계와 인간 두뇌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첫째로 기계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아무런 오류 없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지만 인간은 가까운 거리에서 진지한 태도로 대화를 해도 메시지를 전하는 데 왜곡투성이다. 둘째로 미래의 기계두뇌는 세포의 수나 여러 개체의 연결에 제한이 없지만 인간의 두뇌는 너무 서서히 진화한다.

그래서 그는 결론을 내렸다. “초감각 능력, 뛰어난 의사소통 수단, 인간과 기계가 조합된 최상의 뇌를 가질 수만 있다면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안다. 내 목표는 사이보그가 되는 것이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보며 기계에 의한 지배의 위협을 절감했다. 그렇다고 과학기술의 발전을 막을 수도 없는 일. 대신 그는 과학기술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인간의 진화에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이런 진화는 이미 시작됐다. 인간들은 이미 정보인식, 저장, 교환 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휴대전화, 컴퓨터, PDA, 디지털카메라 등을 몸에 달고 다니며 살아간다. 이제 인류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현재 인간인 상태에 만족한다면 지금 그대로 머무르면 된다. 하지만 잊지 말라. 우리 인간이 아주 오래 전 침팬지에서 분리됐던 것처럼 사이보그도 인류로부터 분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간으로 남기 원하는 사람은 ‘미래 세상의 침팬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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