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63>卷三. 覇王의 길

  • 입력 2004년 5월 27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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鴻門의 잔치(21)

장부(張負)가 몰래 따라가 보니 진평의 집은 성벽을 등진 후미진 골목 끄트머리에 있었다. 금세라도 내려앉을 듯한 지붕에 문 대신 해진 돗자리가 드리워져 있는 초라한 집이었다. 그러나 마당을 보니 많은 수레바퀴 자국이 있었다. 수레는 귀한 사람들이 타는 것이라, 진평의 교유가 어떠한지를 짐작한 장부는 그길로 집에 돌아가 아들 장중(張仲)에게 말했다.

“나는 오늘 좋은 손녀사윗감을 보았다. 손녀아이를 진평에게 시집보내야겠다.”

“진평은 가난뱅이 주제에 일은 않고 빈둥거려 온 고을 사람들이 모두 그를 비웃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딸아이를 그런 빈털터리에게 시집보내려 하십니까?”

장중이 못마땅한 듯 아버지를 쳐다보며 그렇게 물었다. 그래도 장부는 물러서지 않았다.

“사람들 가운데 진평과 같이 훌륭한 용모를 지닌 이는 흔치 않다. 그런 진평인데 끝까지 가난하고 비천하게 지낼 까닭이 어디 있겠느냐?”

그렇게 우기면서 기어이 손녀딸을 진평에게 시집보냈다.

장부는 진평에게 돈을 빌려주어 예단을 장만하게 하고, 술과 고기를 사서 크게 잔치를 치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고도 시집가는 손녀를 불러 다시 엄하게 타일렀다.

“진평이 가난하다고 하여 그 사람을 남편으로 섬기는 데 조금이라도 불손함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그리고 시숙이 될 진백(陳伯)은 시아버지 모시듯 하고, 손위 동서되는 그 처는 시어머니 모시듯 하여라.”

뿐만 아니라 장부는 손녀를 시집보낸 뒤에도 많은 재물을 나눠주어 진평은 나날이 살림이 넉넉해졌고, 사람들과의 사귐도 더욱 폭넓어졌다.

한번은 진평이 사는 마을에서 토지신[사]에게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진평을 재(宰)로 세워 고기 나눠주는 일을 맡겼다. 진평이 그 일을 잘 해내어 마을 사람들이 한결같이 칭찬하였다.

“진씨네 젊은이가 재(宰)노릇을 참 잘하는구나. 이렇게 공평하게 고기를 나눌 수 있다니!”

진평이 그 말을 듣고 탄식하였다.

“아아, 슬프구나! 이 진평을 천하의 재[宰相]로 삼아도 고기를 나누듯 공평하게 다스릴 수 있는데….”

그 뒤 진승과 오광이 진나라에 맞서 군사를 일으키자 진평은 몇몇 젊은이들을 데리고 임제(臨濟)로 가서 위왕(魏王) 구(咎)를 섬겼다. 위왕은 그를 태복(太僕)으로 삼고 잘 대우하였으나 그 뒤가 별로 좋지 못했다. 좋은 계책을 올려도 받아들일 줄 모를뿐더러, 그를 시기하고 헐뜯는 무리가 있어 오래 위왕 밑에 머물 수가 없었다.

얼마 뒤 항우가 진나라 군사를 쳐부수고 하수(河水) 부근에 이르자, 진평은 그에게 귀순하고 함께 관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진나라 군사들을 무찌른 공로로 경(卿)의 작위를 받고 항우의 군막에 머물게 되었다. 진평이 그날 홍문의 잔치에 끼었다가 항우로부터 패공을 불러오라는 명을 받게 된 경위는 대략 그랬다.

패공을 놓아 보낸 진평은 한참이나 장량과 말을 맞춘 뒤에야 항우가 기다리는 술자리로 돌아갔다. 지양(芷陽) 샛길로 빠져나간 패공이 패상(覇上)의 진채에 이르렀을 무렵이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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