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호원/주한미군 감축, 국방부는 무관?

  • 입력 2004년 5월 20일 14시 41분


주한미군의 이라크 파병 방침이 알려진 17일 오전 9시 외교통상부 김숙(金淑) 북미국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주한미군 차출의 배경과 향후 과제 등에 대해 대국민 발표를 했다.

반면 한반도 안보 상황의 변화를 직접 책임진 국방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1시간 뒤인 오전 10시 정례브리핑을 시작했다.

더욱이 브리핑은 '외교통상부에서 이미 기자회견을 했으니 그곳에 물어봐라'는 식으로 이뤄졌다.

남대연(南大連) 공보관은 "국방부장관도 주한미군 차출을 (외교부와의) 전화통화로 알게 됐다"고 말해, 주무부서인 국방부의 입장과 대비책을 들으려던 출입기자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사태에 심각성을 깨달은 외교통상부와 국방부는 7시간 후인 오후 5시반 각 부처에서 동시 기자회견을 갖고 '한반도 안보에 전혀 영향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기자회견에서도 국방부는 안보 불안을 걱정하는 국민들을 안심시키기는커녕 '우린 어쩔 수 없었다'는 책임 회피로 일관했다.

권안도(權顔都) 정책실장은 "이달 초 열린 미래 한미동맹 구상회의에서도 주한미군 차출 이야기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중요한 사안에 한미간의 공식 국방채널이 전혀 활용되지 못했다'는 비난은 아예 인식도 못 하는 듯했다.

조영길(曺永吉) 국방부장관은 19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출석 요청이 있기 전까지 아예 모습도 나타내지 않았다.

조 장관은 또 주한미군 차출이 알려진 이틀 후인 19일 당일 오전에야 리언 라포트 주한미군 사령관을 만났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조 장관의 모습은 3월12일 국회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이헌재(李憲宰) 경제부총리가 보여준 모습과는 크게 대비된다.

이 부총리는 탄핵안 가결 3시간 후 "경제활동에 관해 불안해 할 이유는 없으며 내가 책임지고 만전을 다하겠다"는 대국민 성명서를 발표했다. 또 점심을 떡으로 때우며 9개의 긴급회의를 참석하느라 한강다리를 세 번이나 넘나들었다.

국방부는 '대북방어태세와 국방정책 기조에 변화가 없어 할 말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이 부총리는 경제상황과 경제정책에 어떤 변화가 있기 때문에 그토록 열심히 뛰어다녔던 것일까.

국방부가 국가 안보와 직결된 주한미군 문제 앞에서 철저히 몸을 숨긴다면 국민은 과연 누구에게 우리의 안보 상황 및 대비태세를 물어보며 누굴 믿고 단잠에 잘 수 있겠는가.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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