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나연/김정태行長의 ‘딴소리’

  • 입력 2004년 1월 13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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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일 동안 지루하게 진행된 LG카드 유동성 위기가 정부 채권단 LG그룹의 ‘3자 합의’로 일단락 됐다. 그러나 사태 수습과정에서 여러 경제 주체들은 소신과 원칙을 저버리는 이중성을 드러냈다.

사태가 급진전되던 7일 저녁에 국민은행은 자료를 냈다.

‘시장 안정을 위해 LG카드 문제 해결에 적극 협조하기로 함. LG그룹도 추가 유동성 문제에 대해 분담해 책임질 것을 요구함….’

이는 국내 기업들에 ‘주주가치 증대와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을 주창하던 시장주의자 김정태(金正泰) 국민은행장의 평소 소신과는 180도 달랐다.

김 행장은 “국내 굴지의 재벌이 사업에 실패하면 내다 버리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며 ‘주주유한책임 원칙’에 어긋나는 발언도 했다.

이런 논리라면 그룹은 어떤 부실계열사도 정리할 수 없다. 또 과거 부실기업 처리에서 채권단이 강조한 첫째 원칙은 우량회사가 부실 계열사를 지원할 수 없도록 방화벽을 치는 일이었다.

정부가 추진해 온 지주회사제도도 명분이 퇴색했다. 정부는 소유구조 투명성과 계열사간 부실 전이(轉移) 차단 등을 내세워 지주회사의 장점을 강조해 왔으나 LG카드 사태 처리과정에서 이 명분을 스스로 내던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식이라면 정부의 지주회사 실험은 희망이 없다”고 지적한다.

물론 정부와 채권단이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LG그룹을 압박한 데는 이유가 있다. 경영실패뿐 아니라 도덕성 문제도 있다고 보기 때문.

LG그룹의 일부 계열사와 개인 대주주들은 LG카드의 지분을 처분하면서 대규모 차익을 챙겼다. 카드사 문제가 불거져 대주주에게 책임을 물으려는 움직임이 있자 주식을 대거 판 것. ‘LG전선 대주주들이 계열분리를 위해 팔았다’는 해명이 있었지만 주식시장에서는 “대주주가 책임을 회피하니 LG카드는 희망이 없다”는 비난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정황에도 불구하고 “법은 지켰으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LG카드 사태를 초법적으로 해결하자”는 논리엔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 지분 이상의 권한을 누린 대주주가 아닌 계열사에 책임을 물은 것은 시장의 수준을 퇴보시켰기 때문이다.

이나연 경제부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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