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89…목격자 (5)

  • 입력 2003년 12월 11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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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그만 그만, 춘식이한테 코를 얻어맞고 눈물이 뚝뚝, 멈추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중단했죠. 야, 권투 그거, 인간이 할 짓이 못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도 춘식이는 링에서 내려가게 놔두질 않았어요. 요리조리 내빼면서 발을 내밀잖습니까? 그러면, 야, 너 발 내밀면 지는 거라고 하질 않나, 글러브 내던지고 권투클럽에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난, 싸움에는 자신이 있었어요. 싸움에는 기술이 필요 없거든요. 권투니 유도니 검도니 하는 운동들, 다 틀이 있잖아요. 틀이 없는 건 싸움뿐이에요. 머리! 손! 발! 이! 팔방미인이어야지, 안 그러면 싸움에는 못 이겨요.

그런데 말입니다, 춘식이 그 자식은 권투도 그렇고 싸움도 그렇고, 엄청 셌어요. 키가 큰 데다 갑옷 같은 근육이 온 몸에 고루 붙어 있어서 그랬겠지만, 고향 밀양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여기 부산에서도 유명했어요. 첫째로는 육상선수로 유명했고, 그 다음은 싸움, 그 다음은 나중에 얘기해 드리죠.

우리가 스무 살 때 일입니다. 춘식이는 초량상업고교에서 지금의 경남제일상업고교로 전학을 갔습니다. 나는 밀양농산학교라는 델 다니고 있었죠. 그러니까 밀양보통고등학교를 졸업한 열일곱 살 때 이후로는 만나질 못한 겁니다. 춘식이네는 누나, 아버지, 어머니가 줄줄이 돌아가시는 불행이 계속됐고, 형님이 가업을 잇기는 했는데, 그게 여자가 많아서, 형수님이 두 딸을 그냥 내버려두고 집을 나가버리고, 첩이었던 여자가 그 자리에 들어앉고, 그런 일이 있어서, 춘식이는 외가 쪽 친척집에 가 있었는데, 남의 집에 신세를 지기가 싫었겠죠. 경남상고 기숙사로 들어갔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4년 만에 부산 운동장에서 만났습니다. 우리 학교하고 춘식이네 학교하고 친선경기가 있어서 말이죠… 그런데 싸움이 붙었어요. 800m 이어달리기 결승전 때였습니다. 준비! 출발! 하고 튀어 나가잖습니까? 막 출발하는데 우리 학교 선수의 팔꿈치가 경남상고 선수의 몸에 부딪치면서 그 선수가 휘청한 겁니다. 그랬더니 그쪽 응원단이 우르르 몰려와서 우리 선수 앞을 가로막고는, 이 새끼! 덤벼 봐! 하고 주먹을 쳐드는 거 아닙니까.

난 농산학교에서는 제일가는 싸움꾼이었으니까, 야, 너희들, 경기 중에 무슨 짓이야, 그렇게 한꺼번에 덤비다니, 부끄럽지도 않아, 하면서 앞으로 나섰죠.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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