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고순자/땀 한말… 들깨 한말…

  • 입력 2003년 11월 21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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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순자
얼마 전 직접 농사를 지어 수확한 들깨 한 말을 갖고 방앗간에서 기름을 짰다. 들깨 한 말에서 나온 들기름은 겨우 1.5L 페트병 한 병 정도. 너무 적다 싶었지만 그래도 내가 직접 수확한 것이라 생각하니 여간 뿌듯하지 않았다.

필자는 몇 해 전까지는 친정에서 공짜로 들기름을 얻어먹었다. 그래서인지 과거에는 그 들기름이 이렇게 귀한 것인 줄도 모르고 나물무침이며 비빔밥에 듬뿍 넣어 먹곤 했다. 그러나 올해 팔순이 된 친정어머니가 몇 해 전 평생 지어오던 농사를 그만 둔 뒤에는 직접 들깨를 사고 방앗간에서 기름을 짜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올해 들어 들깨농사라도 내 손으로 해보자는 생각에 아침운동을 다니면서 눈여겨 봐두었던 산자락 묵정밭(농사를 짓지 않고 묵혀 둔 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찌는 듯한 여름,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한 달 동안 들깨 모종을 하느라 비지땀을 흘렸다. 가을의 결실을 기대하는 부푼 마음에 손바닥에 물집이 생기도록 쑥부쟁이 뿌리를 파내기도 했다. 여름의 수고를 품삯으로 따진다면 서너 가마의 들깨를 수확했어야 수지타산이 맞을 거라고 스스로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올여름 유난히도 잦았던 비와 태풍 ‘매미’의 영향으로 인해 들깨농사는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시름에 잠기기도 했다. 병해충이 기승을 부려 과연 가을에 들깨가 제대로 여물기나 할지 걱정도 많이 했다.

예상했던 대로 수확은 보잘것없었다. 그나마 수확한 들깨의 절반이 쭉정이였으니 더 이상 말할 게 무엇이랴. 들깨를 거두면서 하늘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한없이 허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평생 동안 하늘만 바라보며 농사를 지었던 부모님 생각에 목이 메어 왔다.

누가 농사를 ‘천하지대본’이라 했던가. 시장에 나가 보면 국산으로 둔갑한 중국산 농산물이 즐비한 현실에서 우리 농민들의 소리 없는 외침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우리 농민, 그리고 우리 농산물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고순자 주부·경기 가평군 외서면 청평2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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