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정희영/열린 학교, 강한 미국

  • 입력 2003년 11월 24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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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영
1년반 전 해외주재 발령을 받은 남편을 따라 아이들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로 오게 됐다. 한동안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고 당황스러웠다. 이제 여유를 찾고 보니 이곳 역시 여느 사람들 사는 곳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국과 다른 점도 있다. 특히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그렇다. 이곳 학교는 ‘열린 공원’ 같은 느낌이다. 한국에서처럼 학부모들이 학교에 드나드는 일이 부담스럽지도 않고, 눈치를 살필 필요도 없다. 엄마들은 반바지에 티셔츠, 트레이닝복에 운동화를 신은 채 학교에 드나들며 즐겁게 자원봉사를 한다. ‘내 아이를 잘 봐 달라’는 아부가 아닌 자발적인 것이다.

아빠들의 학교 참여도 적극적이다. 학교측은 직장에 다니는 부모들이 학교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학기 초에 직장 퇴근 시간에 맞춰 반별 설명회 일정을 짠다. 선생님과의 면담도 한국에서처럼 오로지 엄마의 몫이 아니라 아빠가 엄마와 함께 참여한다.

필자의 아이들은 휴일에 집에서 쉴 때면 빨리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아마도 미국의 학교는 공부만 강요하는 곳이 아니라 존중받고 이해받으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 전 딸아이가 전날 한 수학 숙제를 깜박 잊고 가져가지 못한 일이 있었다. 딸아이가 미안해하며 상황을 설명했더니 선생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 난 널 믿어”라고 말해줬다고 했다. 그 얘기를 전해주는 딸아이의 얼굴에서 자신을 신뢰해준 선생님에 대한 존경이 묻어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스승과 제자가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며 이해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더없이 중요함을 새삼 깨달았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힘이 그런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닐까.

얼마 전 인터넷에서 한국 대학수학능력시험 직후 성적을 비관해 자살한 학생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교육제도나 교육환경 개선이 필요하겠지만, 그것에 앞서 우리 모두의 마음을 바꾸는 게 더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따뜻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선생님의 말 한마디, 진정으로 자녀를 이해하는 부모의 격려, 이런 것들에 우리의 아이들이 목말라 있는 것은 아닐까.

정희영 주부·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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