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미즘은 럼즈펠드 장관의 참을 수 없는 솔직한 성격과 레슬링 선수 출신답게 순간 포착에 능한 민첩함에서 비롯된다. 거기에 국방장관을 두 번이나 맡은 유능함과 세계 최강의 나라를 이끈다는 자신감, 핵심을 재빨리 파악하고 대처하는 리더십은 러미즘에 빛을 더해 줬다. 9·11 직후 보수적 잡지 ‘내셔널 리뷰’가 일흔이 가까운 그를 가장 섹시한 남자로 꼽았을 정도다. 비록 지금은 이라크 후폭풍 때문에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신임을 잃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지만.
▷러미즘은 공식적 발표문보다 그의 본심과 의도를 잘 드러내 주목의 대상이 된다. “임무는 다른 모든 것을 앞선다”는 럼즈펠드 장관은 “공정하려면 먼저 강해져야 한다”는 말로 강한 미국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강자의 패러독스’를 표출한 바 있다. 방한 기자회견에서 “허약함은 사람들이 고려하지 않았어야 할 일을 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말은 한 기자의 질문에 “My goodness gracious!(이런 참, 굉장하네)”하고 터뜨린 조롱조의 감탄사와 함께, 비전투병 중심으로 파병하겠다는 한국의 결정이 못마땅하다는 표현일 수 있다.
▷일국의 국방장관으로서 군사적 능력만이 적을 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 보면 세계제패를 꾀한다는 일종의 오만이 아닌가. 이 때문에 러미즘은 종종 설화(舌禍)를 일으켰다. 이라크전에 협조하지 않는 유럽을 ‘늙은 유럽’이라고 말해 독일과 프랑스를 발끈하게 만든 적도 있다. 이번에 북한을 ‘악’으로 칭하고 “극적 정권변화가 북한을 휩쓸 수도 있다”고 언급한 것이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오지나 않을지 지켜볼 일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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