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용기/'내국인 역차별' 재경부 군색한 해명

  • 입력 2003년 9월 5일 17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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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경제부는 본보 4일자에 보도된 ‘은행법 내국인 역(逆)차별 논란’ 기사와 관련, 이날 해명자료를 냈다.

재경부는 “현행 은행법 상 은행주식 소유한도 규제에 있어 내·외국인간 차별이 없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는 “주식보유 10% 한도는 내·외국인에게 같이 적용되며, 부실금융기관의 정리 등 특별한 사유가 인정되어 금융감독위원회가 10% 초과보유를 예외적으로 승인하는 경우에도 내·외국인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재경부의 해명은 과연 어느 정도의 ‘실체적 진실’을 담고 있을까.

은행법 시행령 5조는 국내 법인이 은행주식을 10% 넘게 보유하려면 그 법인(또는 법인이 소속된 기업집단)의 부채비율이 200% 이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은행주식 취득자금은 차입금이 아니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기자는 해명자료를 작성한 재경부 공무원에게 전화해 “이것이 왜 차별조항이 아닌가”라고 물어봤다.

이에 대해 그는 “은행법 시행령 5조에는 초과보유하려는 외국 금융기관은 이러이러해야한다는 조건도 포함하고 있으니 역차별이라고 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외국인에 대한 조건은 ‘국제적인 신인도가 있을 것’ ‘자기자본비율이 8% 이상일 것’ 등 지극히 형식적이고 최소한의 것이다. 또 비(非)금융 외국법인에는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있다. 결국 은행법은 장기로 치면 내국인에게 차(車)와 포(包)를 떼고 둘 것을 요구하면서 외국인은 상(象)만 떼고 하라는 것과 같다.

역차별 논란이 일 때마다 상당수 관료는 이렇게 말한다. “글로벌시대에 민족주의는 낡고 국수적인 것이다.”

하지만 8년간 영국 유학을 경험한 기자는 과연 꼭 그럴까란 의구심이 든다.

미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르던 19세기 은행의 이사진이 전원 자국인일 것을 요구했다. 현재 월가(街)가 있는 뉴욕주(州)는 아예 외국 은행의 영업을 금지했다.

영국은 지금도 비공식적으로 국내에 유치된 해외자본 생산품 중 일정비율 이상은 반드시 수출하도록 하고 부품 소재를 영국 내에서 조달하도록 ‘지도’하고 있다. 글로벌리즘과 민족의 이해는 반드시 상치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경험이 그렇다.

정부가 세계적 시야를 갖고 외국인 투자 유치에 힘을 기울이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 하지만 국내자본이 투자를 멈춰 성장 동력이 떨어지는 현실을 감안하면 내·외국인이 공정한 투자경쟁을 벌이게 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했으면 좋겠다.

김용기 경제부기자 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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