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803…낙원으로(20)

  • 입력 2003년 8월 26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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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으로 가는 사람들은 그래도 친절하다. 이번에는 살아 돌아올 수 없을 것 같다, 전선에서는 돈도 쓸 수 없으니까, 이 돈 다 너한테 주겠다고 해서, 평소 같으면 가서 보란 듯이 죽으라고 하는데, 그런 말 하지 말고 건강하게 살아 돌아오라고 위로해 줬다. 그런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날에는 정말 눈물이 나온다.”

“병사들도 무섭기는 마찬가지지. 다들 나고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여기 병사들은 거의가 나고야 출신이라고 아버지가 그러더라.”

“아이고,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다들 빨간 딱지 때문에 끌려온 거지. 나 껴안고 장교가 그랬다, 우리 병사들은 관에도 못 들어가고, 어머니 얼굴도 볼 수 없다고.”

“쉿!”

“아이고, 우리나라에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기차하고 배하고 몇 번이나 갈아탔는데, 여기가 어딘지 어디 알 수가 있나. 날개라도 있으면 날아갈 텐데. 아아, 구름이나 되고 싶다, 아이고.”

“병사들이나 마찬가지다,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나. 에이코도 오토마루도 미야코도 기름 붓고 태워버렸다. 겨우 머리뼈만 부숴서 몰래 주머니에 담아 가지고 있지만, 진짜 이름을 모르니 아버지 어머니한테 보내줄 수도 없고. 에이코는 대전, 오토마루는 영천, 미야코는 강진이라고 했으니까, 살아 조선으로 돌아갈 날이 있으면 우리 땅에다 묻어주고 싶다.”

“살아 돌아간다 해도, 아버지 어머니 얼굴을 어떻게 보겠나. 이런 몸으로는 시집도 갈 수 없고. 시집도 못 갈 딸을 집에다 놔둬서 어쩌겠다고. 아무데도 갈 수가 없다, 아이고야!”

“에이코나 오토마루나 미야코는 괴로워하면서 죽었지만, 그래도 목숨이 짧은 만큼 고통도 덜하다.”

“쉿, 아버지다.”

구둣발 소리가 다가오고, 식당으로 아버지가 들어왔다.

“뭘 그렇게 꾸물대는 거야, 빨리 빨리 먹고 다 먹은 사람부터 물 끓여서 목욕해. 오늘은 검사가 있는 날이니까 도구도 깨끗이 씻고. 임균이 눈에 들어가면 풍안(급성 결막염)에 걸려서 눈이 멀 수도 있으니까, 목욕한 물로는 절대 얼굴 씻지 말고. 어이, 나미코, 하나도 안 먹었잖아. 나미코하고 고하나한테는 여러 가지로 가르칠 게 많으니까 얼른얼른 먹어. 나미코는 말랐으니까 밥 먹는 것도 일이다. 빨리 안 먹어! 고집 부릴 거야. 매운 맛을 봐야 알겠어!”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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