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찰서장이 장관 구명 로비하다니

  • 입력 2003년 8월 22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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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자치부 간부들과 경찰서장을 포함한 일부 경찰 간부들이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건의안 국회 제출과 통과를 막기 위해 한나라당 의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했다고 한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명백한 훼손이고 권한 남용이다. 경찰이 동원된 것은 더 문제다. 경찰의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지 야당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상사 구명 로비나 하는 데 있지 않다.

김 장관은 자신이 지시한 일도 아니고, 경찰이 한총련 시위 사건을 의원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런 얘기가 나온 것 같다고 해명했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해당 서장들은 접촉보고서까지 경찰청에 제출했다고 한다. 이들의 로비가 얼마나 집요했는지 일부 의원들은 “시달렸다”는 얘기까지 하고 있다. 행자부 간부들은 물론 김 장관 자신도 40여명의 의원들에게 전화로 사정을 설명했다고 시인했다.

이들이 로비를 위해 동원한 논거도 납득할 수 없다. “국민도 해임건의안에 관심이 없으니 반대해 달라”고 했다니 어떤 근거로 그렇게 판단했는지 궁금하다. 물론 해임건의안에 대해서는 한나라당 내에서도 논란이 있다. 그러나 한총련 학생들에게 미군부대 앞 집회를 허용함으로써 미군 장갑차 점거 사건이 일어난 데 대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경찰이 국민의 관심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일선 서장을 동원한 의도도 의심스럽다. 경찰서장이 선거법 위반행위에 대한 1차 수사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총선을 8개월여 앞둔 지역구 의원들로서는 누구라도 서장과 불편한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을 노렸다면 더욱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남해 군수였던 김 장관을 일약 행자부 장관에 발탁하면서 청와대는 중앙정치의 구태에 물들지 않은 새 인물로 공직사회를 일신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조금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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