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기타]'인생의 사용'…파리의 풍경-역사와 속깊은 대화

  • 입력 2003년 8월 8일 17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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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사용/함정임 지음/296쪽 1만원 해냄

가끔 자신의 인생을 과연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사용하고 있는지 자문해본다. 자신이 주체적으로 사용하는 시간보다 아마 사용되는 시간이 훨씬 많지 않을까. 가정, 학교, 직장 등 수많은 관계와 사람 속에서 자신의 인생은 남들을 위해 쓰이는 시간이 더 많을 것이다.

저자는 10여년 전부터 거의 매년 프랑스 파리에서 한 달간 자신의 인생을 ‘사용’한다. 그는 이방인으로서 한발 뒤로 물러서서 파리를 바라본다. ‘파리’라는 세계를 자신의 방식으로 말하고, 걷고,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 저자의 방식이란 자기 안의 다양한 자기를 장소에 맞게 발현시키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 자유를 느낀다.

파리에서 저자의 인생 사용 행로는 파리의 중심 시테 섬에 있는 노트르담에서부터 시작된다. 보통 관광객처럼 성당 안에 들어갔다가 훑어보고 나오는 식으로 노트르담을 봐선 곤란하다. 태양의 흐름에 따라 오전엔 동쪽 외벽의 플라잉 버트레스(두 벽 사이에 아치 모양으로 걸쳐 버팀벽 같은 구실을 하는 것)를, 정오 무렵엔 남쪽 장미창을, 그리고 오후 7시경엔 건물 서쪽(정면)의 퍼사드를 바라봐야 노트르담의 진경을 맛볼 수 있다.

경치를 감상한 뒤 저자는 노트르담의 역사와 문화를 더듬는다. 1163년 루이 7세의 명령으로 모리스 드 쉴리 파리 주교가 생테티엔 성당을 개축하기 시작해 약 200년 뒤인 1345년 높이 130m의 고딕 양식 성당이 들어섰고 노트르담(우리들의 귀한 부인=성모 마리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이곳을 무대로 19세기 씌어진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의 곱추’(원제 파리의 노트르담)가 노트르담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한때 폐쇄됐고 포도주 저장소로까지 전락했던 노트르담은 위고의 소설 이후 복원됐다.

이렇게 저자는 카르티에 라탱, 레오 카락스의 영화로 유명해진 퐁뇌프, 생루이섬, 몽파르나스, 소설가 발자크의 체취가 남아 있는 파시, 루브르박물관, 몽마르트르, 퐁피두미술관, 라데팡스 등을 샅샅이 탐험한다.

생활에 얽매인 사람들이 한 달이나 짬을 내서 인생을 사용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우선 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파리의 인생을 체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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