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고위 공직자가 아내와 가정을 위해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단행한 예는 파월 외에도 많다. 가까운 예가 이라크전쟁을 단기간에 승리로 이끌어 영웅이 된 토미 프랭크스 중부군 사령관. 그 역시 결혼식 날 “언젠가 군을 떠나겠다”고 한 아내 캐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올해 36년 군 생활을 마감한다. 이를 위해 그는 육군참모총장직 제의까지 거절했다. 평생을 공직에 헌신한 후 남은 삶을 아내와 가정에 돌리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아내와 가족 사랑의 예는 우리 주변에도 흔하다. 최근 ‘사랑할 때 떠나라’라는 책을 낸 최오균씨는 아내가 불치의 병으로 쓰러진 후 98년 미련 없이 은행 지점장직을 버렸다. 그는 ‘마음껏 달려 보고 싶다’는 아내의 소망을 들어주기 위해 병든 아내를 이끌고 5년간 세계를 여행했고, 아내의 병은 거짓말처럼 나았다. 우리나라 벤처업계의 신화로 불렸던 염진섭 전 야후코리아 사장은 아픈 두 아이와 아내를 사랑하는 애틋한 마음을 최근 ‘나는 잠깐 긴 꿈을 꾸었다’라는 시집에 담아 출간했다.
▷영국 속담에 “아내가 없는 남자는 지붕 없는 집”이라고 했고, 이탈리아에도 “아내가 없는 자는 잎과 가지가 없는 나무”라는 말이 있다. 올해로 81세가 되는 시인 김춘수옹은 아내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해 이런 시를 썼다. ‘이 사람이 어디 가서 잠시 누웠나./옆구리 담괴가 다시 도졌나, 아니 아니/이번에는 그게 아닌가 보다./한 뼘 두 뼘 어둠을 적시며 비가 온다./혹시나 하고 나는 밖을 기웃거린다./나는 풀이 죽는다.’(‘降雨’ 중에서) 세상의 부귀공명을 다 누려도 늙어서 등 긁어줄 아내보다 못하다는 건 동서고금의 진리인가 보다. 세상일에 너무 바쁜 남성들은 ‘늦기 전에’ 파월 장관과 프랭크스 장군의 결단을 배울 일이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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