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임종안/버려진 아이 키우는 罪

  • 입력 2003년 5월 26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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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안
‘아버지는 사고로 죽고 어머니는 가출하고 늙은 할머니 혼자 기르기가 너무도 힘들어 아이를 두고 가니 부디 잘 길러 제자로 삼으십시오!’

이런 메모와 함께 이곳 전남 천운사 도계암 비구니 처소 대문 앞에는 자주 어린 아이들이 버려지고 있다. 대부분 손발을 전혀 못쓰는 지체 장애아이거나 생후 2, 3개월도 채 되지 않은 핏덩이여서 정말 난감하기만 하다.

하지만 자비를 본분으로 삼아야 하는 불제자(佛弟子)이기에 지중한 인연으로 믿고 십수년째 아이들을 기르며 살고 있다. 때로는 아이가 없는 신도네 집에 보내기도 하고, 더 잘 기를 만한 다른 절에 데려다주기도 해, 현재는 정신질환자를 포함해 6명이 함께 지내고 있다. 주위에서 정부당국에 신고해 도움을 받으라는 권유도 적잖이 받았다. 그러나 행여 심신이 불편한 아이들이 주위 사람들로부터 ‘부모 없는 고아’라고 놀림을 받지는 않을까 해서 넉넉지 못한 형편임에도 생활보호대상자 신고를 미뤄왔다.

해가 거듭되면서 필자가 버려진 아이를 거둬 키운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지역 언론 등에 보도돼 이 일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생활보호대상자로 등록해 약간의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최근 면사무소를 찾았다. 하지만 담당직원은 “다른 곳으로 보내지 왜 절에서 기르려고 하느냐. 호적 상 친부모를 찾아주어라”며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필자는 1999년 11월부터 10개월 동안 40여회나 면사무소를 찾아갔고, 상급 책임자에게 항의성 건의를 한 끝에 겨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 버려진 한 아이 역시 도계암 스님의 호적에 올린 후 3월14일 면사무소에 생활보호대상자 신고를 했다. 그러나 이 또한 “다른 업무가 많이 밀렸으니 기다려야 된다”는 등의 이유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진정 이것이 참여정부 복지 행정의 현주소인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공무원의 자세가 이런 것인지 묻고 싶다. 여러 날을 두고 남의 허물을 덮어주며 사는 것이 종교인의 덕목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공무원의 무성의한 태도는 즉각 시정돼야 마땅하다.

임종안 천은사 도계암 종사원 전남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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