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막중/'깜짝쇼式 신도시' 곤란

  • 입력 2003년 5월 11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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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격을 잡기 위해 드디어 정부가 신도시 개발이라는 칼을 빼 들었다. 지난해부터 수도권의 주택가격이 들썩이기 시작하면서 신도시 이야기가 간헐적으로 흘러 나왔지만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왔던 신도시의 위치가 김포와 파주로 확정되어 전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집값잡기用’ 졸속개발 되풀이▼

이렇듯 우리나라의 신도시는 주택가격이 들썩여야 ‘깜짝쇼’의 주인공처럼 무대에 등장한다. 신도시에 대해서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혜성같이 나타난 소방수의 역할이 기대되고, 이에 따라 이번 김포와 파주 신도시 개발에 대한 세간의 평가도 주택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얼마나 약발이 먹힐 것인가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14년 전인 1989년 말에도 주택가격 폭등을 잠재우기 위해 분당 일산 등 수도권 5개 신도시 계획이 전격 발표되었다. 그리고 불과 3, 4년 만에 신도시 입주가 시작되는 초고속 개발이 이루어졌고, 수도권의 공간구조는 하루아침에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되었다. 신도시는 당장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주택을 대량으로 빨리 공급할 목적으로 구상되었으므로 애당초 자족성 확보를 기대하기란 힘들었다. 신도시 개발의 졸속성에 대한 시비는 이후 신도시의 ‘신’ 자(字)도 꺼내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리고 비로소 14년이 지난 지금 주택가격이 또 한번 들썩이기 시작하자 신도시 카드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으나 그때와 비교해 상황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이번에도 주택가격 상승이라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신도시의 초고속 개발이 불가피할 것이고 광역교통망을 비롯한 기존의 모든 수도권 계획도 신도시 개발에 맞추어 다시 짜야 하는 등 한바탕 법석을 떨어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신도시의 자족성을 비롯한 졸속 개발에 대한 논란은 다시 한번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굴 것이다. 결국 지난날의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아무것도 배운 것 없이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신도시는 주택가격이 오르기 전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두고 치밀하게 준비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신도시를 미리 준비해두기 위해서는 앞으로 현 세대가 살아가는 동안 어느 지역을 어떻게 보전하고, 어느 곳을 언제 어떠한 순서로 어떠한 원칙과 조건에 의해 개발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큰 밑그림이 먼저 그려져야 한다.

신도시는 한 번 개발되면 후대에까지 파급 효과를 미치고, 잘못 개발되었다 하더라도 다시 고칠 수가 없다. 따라서 이미 주택가격이 오른 다음 당장의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서둘러 신도시를 개발하게 되면 설혹 단기적으로 주택가격은 잡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예고되지 못한 공간구조의 변화로 인해 장기적으로 부담해야 할 토지 교통 기반시설과 환경비용 등의 사회적 비용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사회는 급한 불을 끄는 데만 신경 쓸 뿐 일단 주택가격이 안정되면 아무도 미리 신도시를 준비하는 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번 김포와 파주 신도시도 사후약방문격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단기적으로 주택가격을 잡는 데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행정수도 이전, 남북통일, 서해안 개발,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을 위한 경제자유구역 설치, 수도권 균형 개발 등의 현안과 관련된 수도권 공간구조 개편의 틀 속에서 보다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안목 하에 건설돼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앞으로 우리 세대가 살아가야 할 수도권 공간에 대한 큰 밑그림부터 먼저 그려야 한다.

▼수도권 균형개발 큰 그림 그려야 ▼

이러한 밑그림 없이 언제까지나 건설교통부에 의해 기습적으로 발표되는 신도시 계획을 놓고 법석을 떨 수만은 없다. 세월이 흘러 다시 주택가격이 들썩이기 시작한다면 어느날 갑자기 신도시 계획이 또 신문의 1면을 장식할지 모르겠다. 국민은 물론 이 분야의 전문가들조차 언제 어디서 신도시라는 혜성이 나타날지를 알아맞히기 위해 점쟁이 노릇을 하는 일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최막중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도시계획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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