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갈 데까지 간 집단이기주의

  • 입력 2003년 4월 27일 19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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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의 이해에 부합하지 않으면 집단의 힘으로 요구를 관철하려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에 싫어하는 시설이 들어오면 안 된다는 ‘님비현상’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폭력을 동원하는 일이 벌어져 갈 데까지 갔다는 느낌이다. 공동체 전체의 이익에 반하는 집단이기주의가 폭력까지 행사한 이상 당국은 반드시 해당자들이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

사스 전담병원으로 지정됐다가 주민 반발로 취소된 서울시립동부병원이나 경북 울진 핵폐기장을 둘러싼 폭력 사건은 집단이기주의가 우리 사회의 건강을 해칠 정도로 심각해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사스 확산을 막는 것이 초미의 과제인데 격리병원조차 지정할 수 없게 되었으니 한심스럽다. 울진핵폐기장반대투쟁위 간부들은 한밤중에 흉기를 들고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을 찾아가 건설 포기를 종용하며 폭력을 사용함으로써 동기의 순수성마저 의심받는 결과를 초래했다.

님비현상에 따른 집단행동은 잘못된 정보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사스는 공기를 통해 전파되지 않는데도 주민들은 사스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 온 동네가 이 병에 감염될 것이라고 믿고 과민반응을 보였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도 17년째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핵폐기장 건설 문제도 정부의 설명을 믿지 못하는 주민들의 불신이 집단행동의 배경이다.

문제 해결은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한 뒤 설득하는 데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사스 전담병원의 경우 주민들에게 여러 단계의 방역조치와 운영방안을 충분히 설명한 뒤 협조를 받아내는 절차가 생략돼 집단반발을 불러온 측면이 있다. 핵폐기장 건설도 투명성과 진지한 설득이 병행되어야만 풀릴 수 있는 문제이다.

인기에만 영합해 집단이기주의를 부추기는 일부 정치인의 행태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주민 설득은커녕 “사스 전담병원 지정을 철회하지 못하면 국회의원 금배지를 떼겠다”고 말해 박수를 받는 국회의원이 있는 한 집단이기주의의 망령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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